박철 <우수파 선언(憂愁波 宣言)>
우수파 선언(憂愁波 宣言) / 박철
햇볕 좋은 날 정발산동 두루미공원 길을 가다가
동네 비스듬히 기울어져가는 집을 하나 보았다
무슨 박물관이라 썼는데 문패가 희미하다
집 자체가 하나의 기울어져가는 골동품이었다
몸을 털며 들어서니 창문으로 밀려오는 갈 햇살이
마룻바닥이 가쁜 숨을 쉰다
그러나 반가운 눈치다
3호방 문 앞에 긴호랑거미 그물이 흥건하고
유리벽 안에 걸린 진열품이 나란히 손을 잡고 서있다
'우수'며 '고뇌'며 그 옆에 '방황'이었다
객은 아득한 현기증에 창밖을 보았다
오래된 동네에 "기울어져가는" 집 한채는 박철에게 매우 친근한 풍경이겠지만, 거기에 "무슨 박물관"이라는 문패가 걸림으로써
"몸을 털며" 들어가야 하는 낯선공간으로 바뀌었다. 거기에는 기이한 고적감이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 고적감을 철저하게 밀고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는 말에 가벼운 해학을 섞어 간단히 실내를 묘사한 다음 곧바로 진열품의 제목이기도 할 세 개의 추상어를,
자신의 심경이기도 하겠지만 결코 자신의 말일 수는 없는 관념어를 그대로 적고는 자신과 그 기묘한 고적감 사이에 "아득한
현기증"을 설치한다. 이 현기증은 '이해할 수 있음'이면서 동시에 '이해할 수 없음'이다. 그는 이 세 낱말에서 자신의 운명에 대한
기호 같은 것을 발견하고 아득한 마음이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기호의 추상화가, 다시 말해서 그 개념의 아득한 극단화가
그를 "객"으로 남게 한다. 그는 객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적어도 자신이 객이 되는 세계 속에 살려 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종류의 것이건 절대를 상정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삶을 일정한 틀에 고정시키는 절대치의 언어는 사물들이
거기 살고 있다는 절대적인 사실과 늘 마찰을 빚기 때문이다. <황현산>
돌아온 패잔병처럼, 실패한 혁명가처럼 상투적으로 나는 감히 말합니다. 이 땅에 다시는 나 같은 불행한 시인이 태어나지 말기를-
내 문학의 시작은 죽음이었습니다. - 詩集 <불을 지펴야겠다> 시인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