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바다, 혹은 사기(詐欺)

미송 2014. 2. 2. 15:03

 

바다, 혹은 사기(詐欺) / 오정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 이야기는 생각할수록 웃음이 난다. 여사제는 강청한다. 천 년을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그녀의 기도를 들어 준 아폴론은 그녀가 천 년을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여든 살 아흔 살…… 백 이십 살. 시간이 흘러도 그녀는 죽지 않았다. 그런데 거울을 들여다 볼 때마다 그녀는 미치도록 고통스러웠다. 어째서 가장 중요한 말을 빼 먹었던가, 곡할 노릇이 따로 없었다……  살되, ‘늙지 않고라는 단서를 잊었던 것이다.

 

늙지 않고 천 년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세상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했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향년 86세에 세상을 떠났다. 생몰을 기록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으랴. 어느 별빛은 이미 수십 억 광년 전 초신성을 발휘했던 잔영일 뿐일진대유한자의 세계랴.

 

젊음은 비극의 예감이요 늙음은 비극의 실현이라 말하며, 우울해 하는 제이의 모습을 보아도 늙어감은 서글픈 일이다. 나 역시 늙어갈 것이다. 늙는다는 건 외양뿐이 아니다, 내장까지의 일이다. 안팎으로 검버섯이 핀다니. 흑. 반짝이는 얼굴빛으로 되돌아와 우리는 한번 더 한때의 청춘을 구가하려는 준비운동도 해 보겠으나, 저녁놀처럼 식어가는 열기가 되어 푸욱 수그러지기도 하리니, 늙음이란 인과因果의 사슬이다.

 

20071월에 나는 사십 초반이었다. 어느 일간지를 통해 서반아어를 연구한 민용태씨를 만난 것은 그때의 일이다. 문학이란 장르에 몰입하기 시작했던 때, 그의 강의를 직접 듣고 정리한 게 생각나 다시 읽어 본다. 지금은 마카 수그리 했는지 나 홀로 수그리 했는지 몰라도, 아무튼, 그땐 멋 모르고 머시기를 열라 추구하던  시기가 아녔나, 아직까지 생각한다. 요약한 내용은 이거다.

 

현대시학적 시작법이란;

느낌 그대로, 다시 말해 강력한 느낌의 자연스러운 넘침으로, 시를 쓴다는 것은 인공적일 수가 있다. 초기낭만주의나 초기상징주의 후기낭만주의와 같은 낭만주의 시학에서 현대시학으로 전환되어야 할 타당성의 예를 들자면, 낭만주의란 자연스런 화장법이고 화장을 하고도 안한것 같은 여자의 얼굴이다. 상상해 보라, 어떤 얼굴이 아름다운지 남자를 환장하게 만드는지. 시도 분명한 화장색을 드러내야 한다. 자기만의 글 색깔을 선명히 드러낼 때 현대 미학적인 시의 사명을 감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 세종대왕 이전에 이미 이 있었다. 말과 말끼리 장난치듯 놀이 하듯 시를 쓰게 하는 것이 현대시학적 시작법이고, 작품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말모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의 해체에 자유로운 시인들을 신이 질투했으니 궁극적인 의미로 신학 이꼬루 문학이란 정의가 타당할 것이다.

 

수사법이란;
비유법(Allegoria), 의인화(annimism- 모든 시는 미신성을 가지고 있다), 패티시즘(물건에도 혼이 있다)을 사용한 시작법은 죽은 언어나 신의 언어를 현대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참신함의 생명력이 실려야 한다. 알레고리 기법을 사용하여 추상성이나 도덕적 개념의 상징들을 구체화 하는 작업. 진정한 신의 언어, 곧 말과 사물에 간격이 없는 이러한 시는 부적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실려야 한다. 동시가 어린이만을 위한 글이 아닌 이유도, 상징을 통하여 매력을 표현할 수 있고, 상징적 당위성이란 어느 한 쟝르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시작법의 자세;
독자는 신이다.’ 시를 쓰는 사람이 굳이 독자들의 이해를 염려하거나 설명하려고 한다면 독자를 무시하고 지루하게 만드는 경우다. 때로는 말도 아닌 말이 더 매력을 풍길 수도 있고, 말소리를 듣는 순간, 그 자체가 득도의 순간일 수도 있다. 반복적인 시어 보다는 생경스러운 말과 운율이 있는 시어들이 덕스럽게 느껴질 수가 있다. ‘시는 낙서장이다.’ 시는 떨어지는 부스러기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우연을 눈여겨 볼 수 있는 민감함. 오자나 실수조차 주어 담을 수 있는 겸손함.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가차 없이 탁 버려 버릴 수도 있는 조탁의 용기. 그리고 자유시에서는 함부로 타령조의 어조를 넣지 않고 생경스럽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시의 목적;
인간은 상징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시는 반복, 주술, 후렴, 광고 같은 효과가 있어서 시를 맛 본 후에 아픈 머리가 시원해지거나, 화투의 패뜨기같이 현실이 확 뒤바뀌거나 언어로서의 마술적 효과가 있어야 한다. 시인이야말로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시의 소망은 원형회복이며 이슬 하나에도 하늘을 비추일 수 있는 기적이다. 시의 놀이를 통해 외형적이고 피상적인 사물들을 정신적으로 승화시키고, 사물화 된 풍경같은 타인을 진정 내 안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노력들이 시인의 사명이 아닐지. 광활한 카오스 속에서 빛 그 자체만으로 반짝 시어를 낚아 올리는 시인들의 희망, 그것은 끝없이 배우려는 기본자세에서 출발할 것이다.

 

애면글면핥아대던 문학이었다. 중요하다, 지금도 생각이 드는 저 문장들, 말들을 읽으면, 말과 사물에 간격이 없는 시는 부적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실려야 한다, 는 부분에선 아직도 자신업스무니다다.

 

대전 정시인 말마따나 이제 혼자 노시는데 달통하신 거 같습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만 안 되면, 가급적 이리 놀 작정이다. 즐거우면 되는 일.

 

독자는 신'이란 문장은 결정적인 순간 한 번 써 먹긴 했다. 어쨌든, 이미 죽은 이와 지금 내 곁에서 늙어가는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다 나는 왜 옛 강의록을 들추었을까. 그것은 오늘 아침 호르헤 우루띠아(Jorge Urrutia)의 시를 다시 읽었기 때문이다. 페이지를 앞 뒤로 넘기다 보면 눈에 다시 들어오는 시와 노래들이 있다. 그래, 어쩌면, 나는, 매일, 여성민 시인이 말했듯 아직 당도한 문장과 이미 당도하지 않은 문장사이에서 저물고 있는지도!

 

말장난을 끝내지 못한 채…….

 

바다, 혹은 사기()(El mar o la impostura)/ 호르헤 우루띠아(Jorge Urrutia),

 

나는 내가 죽음의 잿더미 속 곰팡이에서

다시 태어난 불사조임을 고백한다

거울에서 나를 보면 나에게는 주검 냄새가 난다

나는 끝없이 내 속에 침몰하며 죽어가고 있었기에

 

새벽의 꽃이여, 네가 함께 왔었지

그리고 강가 사원의 기둥들 앞에서

나에게 해질 무렵의 색깔을 보여주었지

나는 오직 그것을 피로 보았지

최소한도 너는 나에게 활을 당기는 법을 가르쳐주었지

 

나는 이따까로 돌아왔다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던

평상 일과로 돌아왔다 나를 씻어주고 향을 뿌려준다

깨끗한 까운을 걸치고 다닌다 동이 트면

업무로 생긴 일들을 해결하러 나간다

밤이 되어 눈을 감을 때

사랑스런 페네로페가 나를 껴안을 때

나는 여자들의 얼굴을 본다, 허우적거리는 남자들의 긴 팔을 본다

파도 속에 죽어가며 작별하는 몸짓들을 본다,

이마에 불타는 눈먼 눈길들

 

나는 노래와 말의 광맥을 찾기를 갈망한다.

 

 

민용태씨는 1970년대에 우화(Fábula)라는 시로 스페인 시단에 등단했다고 했다. 그때 그의 시를 심사했던 사람이 호르헤 우루띠아(Jorge Urrutia)의 아버지인 레오뽈도 데 루이스(Leopoldo de Luis)라고 말하며, 우루띠아와 자신은 같은 한 분을 의 아버지로 모신 자식들이라 덧붙였다, 어쨌든, 주관적으로 편집된 기억은 그렇다.

 

우르띠아에게도 산다는 것은 바다 위를 항해하는 것과 같았을까. 바다가 죽음과 고통의 상징이라면 산다는 것은 죽음 위에 떠 있는 위대한 물거품이거나 부질없는 영광 혹은 사기 당하기였을까. 율리시즈(시저Caesar, 카이사르; 다른 으로 발음되는 同一人)같은 위대한 영웅의 항해도, 인생도, 결국 사라져가는 울부짖음의 기억이나 우울증을 위한 밑밥들이었을 뿐. 다만 거기 유일한 희망은 그 속에서 노래와 말의 금광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시인은 말하고 싶었을까. (이 부분은 민용태씨의 감상이다) 

 

요즘 들어 비극을 자주 말하는 제이를 지켜보며 나는 도와 줄 방법을 찾지 못한다. 나도 곧장 따라 늙을 터이니, 늙는다는 것에 대해 그리 우울해 하지 마! 한들, 그깟 말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내 눈에도 확연한 것들이란 수북해진 흰 머리카락과 깊어져 가는 주름살 우울해서 자꾸 줄어만 가는 말수, 하염없이 튕겨대는 기타 줄의 울림뿐이니…….

 

그저 조용히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 다니거나, 없는 실력 발휘해서 담근 백김치나 썰어 내 놓는 일 따위가 도움의 전부이다. 하물며 오래 전 별빛들도 그랬다 카는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할 때 등장하는 저 로마의 율리시즈도 그랬다 카는데, A nimi C……. 영웅의 항해도, 얼룩뿐인 인생도 결국 사라져가는 울부짖음의 기억이나 우울증을 위한 밑밥들이었을 뿐이란 말이 딱 맞는 말이네! 결국 밑밥 몇 숟갈 깐죽대다 돌아가시는 거 였단 말이네 …….

 

어제부터 거울에 비치는 흰 머리카락을 들여다보던 제이가 미용실에 들렀다. 어제는 모두가 문을 닫았었고, 오늘은 단골 미용실이 아닌 다른 한 곳이 문을 열었다고 이발을 하고 온 제이가 말했다. 산뜻해진 스타일 탓인지 제이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예쁘게 잘 다듬었네…… 하고 들여다보는데 제이가 활짝 떠드는 말그 놈의 여편네는 어딜 가고 없길래, 저 쪽 다른 미용실엘 갔더니 야, 젊은 여자가 있더라, 그 여자 머리를 잘 깎아주는 건 둘째 치고 말야, 나한테 뭐라 한 줄 아냐

뭐라 했을까…… (궁금)

아저씨는 얼굴 모양이 외국사람 분위기라서 흰 머리카락을 길러도 아주 잘 어울려요, 게다가 키도 크시니 말예요…….‘

어머 담부턴 그 미용실로 가야겠다.’

당연하지……!’

제이가 외국 배우 톰 행크스를 닮았단 생각을 2007년 즈음반쯤 미쳐있었을 때 나도 한 적이 있다.

톰 행크스 닮았다 고 했었나? 당신이?’

아니…… 더스틴 호프만!’

Dustin Lee Hoffman!

어쩜! 이름에 호프도 들었고 제이의 도 들었을까 (아마 이러는 나를 나 스스로도 빙신쯤으로 가늠은 할까).

 

 

호프만은 지금도 살아 있다. 제이 보다 훨씬 더 할배같은 얼굴로, 키는 168. 고향은 둘 다 캘리포니아. 아니. 엄마가 사는 곳과 고향은 동일한 게 아니었지. 고향은  다르다. 어쨌든, 웃는 남잔 다 예뻐! 해 주고 싶단 마음이 마구 든다늙으면 좀 어때. 늙기만 하고 천 년을 산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를 봐봐.

 

비극의 예감이 비극의 실현으로 떠오른 늦은 해의 시각에 우리는 해사하게 웃으며 다시 기다린다. 가까운 죽음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