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국 '금요일의 pub', 김남호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
금요일의 pub / 한용국
사랑을 이야기하던 시간들은 지나갔다
남은 자들이여 남은 것은 웃음뿐이다
우리에게는 날씨의 연금술이 필요할 뿐
서로에게 얼마나 무용한지 확인하기 위해
발끝을 까딱거리며 의자를 들썩이는 거다
나름대로 깔끔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나사 같은 감정들을 처리하지는 못했으니
기다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기다릴 테지
죽은 물고기의 살점을 우물거리며
우리에게 허락된 자세는 풍자를 베끼고
해탈을 지껄이다 우아하게 사라지는 일
부연 연기 속으로 누구는 벌써 홀로그램이다
구원은 일기예보의 정확성 여부에 달려 있다
술잔의 높이가 똑같은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온다던 사람은 아마 늦게라도 도착하겠지
하지만 이미 우리의 얼굴은 흘러내렸으니
대화는 다시 오늘의 날씨부터 시작하는 거다
사랑을 이야기하던 시간들은 지나갔지만
서정적인 척추를 쓰다듬는 일은 가능하니까
무성생식에도 서글픈 온기는 있다고 믿으니까
그림 출처 : 사이먼 본드(simon Bond)의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 / 김남호
神이 창조한 것 중에
끈의 노예로 만들 수 없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고양이다
- 마크 트웨인
꼬리에 갓을 씌워 스탠드 燈을 만든다 :
고양이와 마주보며 그림책을 읽거나 고양이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손톱을 깎거나 잠이 안 와서 콧구멍을 후비거나 콧구멍을 후비다 어제를 건드려 손톱 끝에 눈물이 묻어나오거나 내일을 건드려 피가 주루룩 흐를 때에 유용하다 이 생리중인 고양이는
꼬리를 세워서 바이올린을 켠다 :
허리와 갈비뼈 주위를 감싸안고 바이올린을 켜기 위해 무대로 나서면 갑자기 깔깔깔 웃을지도 모른다 간지러워서 갈비뼈가 간지러워서 허리가 간지러워서 꼬리가 간지러워서 바이올린이 간지러워서 박수소리가 간지러워서 당신은 앵콜을 받고 당신은 간지러워서
스포츠 용품으로 쓴다:
고양이를 잘 뭉쳐서 투포환 대용으로 쓰고 꼬리를 잡고 테니스라켓으로 쓰고 고양이 썰매로 만들고 수영할 때 구명조끼로 아령으로 역기로 야구 배트로 권투 글러브로 보올링 공으로 건강한 신체에 위험한 정신 고양이가 도망가고 쥐가 무서워서 도망가고 이건 도망이 아냐 조깅이라구 고양이는 조깅처럼 도망가고 쓰레기통 뒤로 도망가고 쥐가 안 쫓아오는데도 도망가고
또는 거꾸로 눕혀서 토스트 접시로 쓴다
* 사이먼 본드(simon Bond)의 카툰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