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고영 <건달의 슬픔>
미송
2014. 2. 24. 23:09
건달의 슬픔 / 고영
술꼭지가 돌아 들어온 날 아침
그녀가 식탁에 앉아 햇양파를 까며 운다
아침 햇살이 맵다
그녀의 눈빛이 너무 맵다
저렇듯 눈빛이 매운 날은
시원한 냉수 한 잔도 간밤의 소주처럼 쓰고 맵다
경험에 의하면 그녀는 지금
까딱 잘못 건그리면 터지고 마는 프로판 가스통처럼
몹시 위험한 상태다
연민으로 지은 잡곡밥, 눈물로 무친 시금치 나물, 한숨을 넣은 장조림,
원망으로 끊인 북어국, 독약이 발라졌을지도 모를 꽁치구이…
그런데 꽁치 대가리는 어디로 갔나
어두육미,
어두육미를 읊조리며
마치 수라상을 받은 것처럼
최대한 황홀하게, 최대한 맛있게 밥공기를 비우는데
눈치 없는 젓가락이 자꾸 미끄러진다
젠장, 기어이 올 것이 왔는가
맵고 뜨거운 눈빛만 남기고 한 무리의 가방이 현관을 나선다
자기야, 가니? 정말 가는 거니?
젓가락을 놓고 잡으려는데
우드득 돌이 씹힌다
월간 『현대시』 2006년 9월호 발표
참 재밌습니다. 빨간 동그라미 다섯 개 손 빠르게 그려주고 싶습니다. 재치와 흥미면에선 박수 받아도 좋을 시. 그렇지만
박수받기 힘들 거 같은 화자의 잘못입니다. 햇양파 때문이라 해도 끝내 여자를 울린 건 남자이니깐요. 우드득 돌 씹는 소리
돌 씹은 얼굴이 독자에게 확연히 전달됩니다. 나중에 둘이서야 어찌되었든간, 시가 맵고 짭짤해서 웃네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