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시] 3월에 들어선 11월

미송 2015. 1. 23. 08:07

 

 

3월에 들어선 11월 / 오정자

                  

         

그 바람이, 그 잎이,

그 낙화가 어지러이 발목 잡는다.

 

순서를 잃은 계절이 채찍처럼

어깨에 떨어진 황사의 저녁,

뿌연 거리를 헤치다가 고개 쳐드니

슬픈 태양이 빌딩에 걸렸다.

 

역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구나.

오늘도 전기세를 못 내어

촛불 켜고 살던 사람이 죽었구나.

 

도로 가득한 전조등과 줄지어선 가로등불빛

한 바가지 떠가지 못해 아예 불길을 뒤집어쓰고 말이다.

이 도시에서 봄을 말하지 않겠다.

 

시인의 글에도 넘어가지 않으련다.

아니다.

언제 우리의 곁에 시인이 있었던가,

굶어죽은 자의 입에 꽃을 꽂지 말라.

보기 흉하다.

한 끼의 밥이 그저 미안하다.

 

 

 

우연히 마주친 <>지은이는 <오정자>.

나는 이 시를 처음 읽었고 지은이 역시 알지 못하지만, 감상소감을 옮겨보기로 한다.

제목 <3월에 들어선 11>을 보면 3월은 봄의 시작, 11월은 겨울로 가는 가을 끝을 응축한다.

춘삼월을 가로막아선 겨울날씨를 빗대어 세상 향해 말을 건다.

3월과 11, 그야말로 춘추(春秋)지절의 입구와 출구가 갖는 함축미가 잘 포개져있다.

참 좋은 표현이 많다. 대강을 살펴보면 <순서를 잃은 계절.....>은 돌연한 꽃샘추위를, <슬픈 태양이 빌딩에.....>

흐릿하게 걸린 초저녁달의 역설이 <촛불>과 이어져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대비시킨다.

그러니 어찌 <봄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시인>을 탓하다 진정 <시인>은 있기나 있냐며 되레 시인이 묻는다

나눌 수 있는 <>이라도 있다면 굶어죽을 사람 없겠으니 아, 그 밥이 곧 <>이 아닌가!

부끄럽다. 부끄러운 4.19 밤이다<2007-04-19 문장웹진 블로거 by_ 이용암>

 

 

 

        엔도오 슈우사꾸의 대표작 침묵(1966)의 무대 나가사끼 현에는

'침묵의 비()'가 있다고 한다. 비문은 이렇다.

"인간이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도 파랗습니다.“

 

 

OFF이던 on이던 돌아다니는 일에 게으른 나는, 소통을 자주 말하지만 소통하는 일에 무심해지는 것 같다. 심플한 게 좋다. 의외로 복잡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욕심은 만가지 괴로움의 뿌리. 세월따라 기억력도 가물해져서 저것이 뉘것인고 치매환자같은 질문을 자주 한다. 사실 저 시는 J의 독백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 앞에서 자기 생각을 누절누절 늘어놓았기 때문에 오버할 줄 아는 나는 찰라간에 그의 사유나 문장들을 도둑질 하곤 했었다. 한때 한창 열띠게 했던 그 짓거리에서 저 시가 나왔던 걸, 좀 부끄럽게 생각한다. 너가 나니까 하는 합리화에서 결국은 내 이름 붙여진 시들이 나왔으니, 사죄할 마음을 갖는다. 욕심을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희망사항을 붙여 본다. 글고보니 나 혼자 썼던 시가 몇 편이나 될까 싶은데, 암튼, 오늘 아침 아이디와 비번을 잊어버린 그렇다고 찾기도 귀찮은 블로그에 갔다가 흔적을 만난다. 내 이름이 저기서 떠돌고 있구나 하믄서. 그래도 이 사유가 내 오늘의 각성인 것은 사실이지 하믄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