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하늘의 무늬

미송 2014. 4. 15. 23:04

 

 

 

 

하늘의 무늬 / 오정자

 

 

빛의 강도를 따라 사물들이 하나 둘 어두운 잠에서 깨어난다. 거대한 잠 속에 잠, 눈속에 눈, 비즈 모빌이랑 색색 리스랑 한지로 만든 인형들이 눈 안으로 들어서면서, '아침은 바로 저 빛이었구나!' 하는 경탄조의 시선이 일어선다. 색色이 조도에 따라 달라진다. 얼굴을 거울에 비쳐 본다. 에구, 먼지 덩어리... 물방울. 어떤 무늬로 떠 있는 것일까 너는 지금. 내가 슬쩍 웃는다. 옆에 있는 이의 까칠하게 솟은 턱수염과 밤새 더 돌출된 눈동자를 살피다가, 인간이야말로 이 우주 안에서 가장 괴이怪異한 현상이란 생각을 한다. 새삼 색다른 무늬를 찾는다. 하늘과 바다. 물과 물결. 무늬와 상처. 차이는 무엇일까.

 

 "문득 든 생각인데 말야, 자기야, 하늘이나 바다에는 상처가 없지 그치?" "하늘의 상처, 바다의 상처 란 말은 거의 못 들어봤잖아?" 듣고 보니 그러네... 고개를 끄덕이는 너, 돌발적인 짜깁기지만 상처 운운 보다는 무늬에 쏠리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빌린 틱낫한을 읽다가 문득, 부처가 쌩까기의 대가가 아닌가 란 생각이 들었다. 설법을 잔뜩 늘어놓다가 별안간 난 아무 말도 안했다, 너희들에게 가르친 것도 하나도 없다 그러니, 이건 뭐 메롱이라는 건지 눈 가리고 아옹하자는 건지. 한 마디로 쌩까자는 거란 결론을 내렸다. 기껏해야 여기까지가 내 불교수준이다. 그러나 눈알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이아몬드에(혹은, 다이아몬드로) 새긴 말씀이라 는 금강경도 그렇고, 오지랖이 소갈딱지인 내 안에 우주가 꽈악 들어차 있고 또, 온 우주 속에 내가 흩어져서 담겨 있다 고 하니, 보르헤스의 거울놀이 같은 화엄경 스토리는 매력적이다. 한 번 빠지면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몰라도 좋아! 하며 블랙홀처럼 흡수되는 것이다.

 

그러한 '내'가 매일 아침 가방을 매고서 계단을 내려설 때, 한 두개 이상의 다른 눈目들이 동시에 쳐다본다 는 사실이다. 그 눈들은 다름아닌 아파트 문門들인데 그 문들은 마치 데쟈뷰 현상처럼 옛 눈目에서 흘러 나온 눈빛이 되어 나를 비추는 것이다. 그 신기한 순간을 나는 온전한 객관인 냥 바라보며 또, 다른 하나의 눈을 의식하고 있는 내 망막의 서열을 재고 있다. 이런 이야기 끝에 누군가는 그런 상태가 오버되면 정신병원에 가는 거라고 일러 주었지만, 일반적으로 나는 그 눈동자들이 나를 공격하거나 해치려 달겨든다 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므로, 그런 곳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고 하였다. 

 

노년에 칼 세이건이 '나의 신神은 신기함과 경이로움입니다' 라고 했던 말이 피부에 닿는 느낌이다. 1초에 40만 킬로를 달리는 빛의 속도로!

 

'어떤 것이 모양으로 분별되는 곳이면 그곳에는 속임수가 있다'는 말이 금강경안에 있다. 여전히 우리는 겉모양에 사로잡혀서 서로 안에 모양도 없으며 비어있는 공空의 실상을 잃곤 한다. 공하다는 건 잃음이 아니라 튼실한 만족감일지니, 일렁이는 물결이 곧 물이듯, 인간의 상처자리라는 것도 결국에는 하늘의 무늬를 찍어놓은 복사물의 일부가 아닐까. 무수히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한 순간의 선정禪定을 위하여 한 송이 꽃을 든 비로자나 오늘도 지나가신다. 내가  바로 이 아침이요, 네 안에 사는 거대한 망막이요, 빛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2012 봄 nynnews.

 

 

♬ 민들레의 밤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