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너무나 뻔뻔한
뻔뻔한, 너무나 뻔뻔한
문창극 사태는 대한민국 메인스트림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문창극에게는 국무총리는커녕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필요한 덕목과 품성들도 거의 결여돼 있었다. 게다가 문창극은 놀랄 정도로 뻔뻔했다. 그는 등장할 때부터 사퇴할 때까지 뻔뻔함으로 일관했는데, 그의 뻔뻔함은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그의 뻔뻔함을 구경하는 내가 무안할 지경이었다.
문창극은 뻔뻔함의 종결자였다. 하지만 문창극보다 더 뻔뻔한 사람이 있으니 박근혜가 바로 그다. 박근혜는 문창극이 사퇴하자 "인사청문회까지 가지 못해서 참 안타깝다"라고 말했는데, 문창극을 총리 후보로 지명한 건 박근혜 자신이다. 문창극 사태의 원인제공자가 전적으로 박근혜라는 말이다. 그런 박근혜가 은근슬쩍 남 탓을 한다. 역시 뻔뻔함에 관해서 문창극은 박근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염치없음이 박근혜나 문창극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주름잡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도무지 '염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희도, 조중동도, 검찰도, 종교권력자들도 염치가 없다. 이들의 마음 속에는 수오지심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힘과 돈이 있는 자들은 염치 없음 혹은 뻔뻔함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데, 힘도 돈도 없는 사람들은 염치를 강요당하는 것이 한국사회다. 몰염치한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된다'고 훈계하는 것이 현실이다.
메인스트림의 몰염치가 특히 위험한 것은 이들의 뻔뻔함이 일반시민들에게 급속도로 전염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부쩍 심해지기 시작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후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되고 있다. 염치가 없다는 것은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악덕 중 최악의 것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능력을 잃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어떤 악덕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능력을 잃는 것 보다 나쁘지는 않다. 부끄러워 하는 능력을 잃은 사람에겐 개선이나 변화를 전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몰염치와 뻔뻔함이 만연하고 권장되는 사회는 인간의 사회가 아니라 짐승의 무리다.
메인스트림이 늘 염치를 느끼도록 긴장감을 불어넣는 시스템을 가진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염치는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나 집단의 경우에는 제도와 법률을 통해 끊임없이 염치를 가르쳐야 한다. 대한민국의 메인스트림은 무엇보다 먼저 부끄러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