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허홍구 <아지매는 할매되고>

미송 2014. 6. 30. 10:08

 

 

아지매는 할매되고/ 허홍구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그래서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 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란 말에는 잔인성이 내포되어 있다. 

 

당연한 것이다. 잔인하단 표현 보다 한 단계 낮춘 인자하지 못하다 란 의미 속에는 인간 뿐 아니라 자연도 포함되어 있으니깐. 그래서 어느 동네를 가나 욕쟁이 할머니와 아저씨들이 살고 있을까, 역설로 밖엔 인간적인 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싶었을까. 암튼, 매사는 때가 있는 법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매사가 나가리('나는 갑니다' 란 뜻)가 된다. 돗가비들이 좋아한다는 묵, 말랑말랑한 묵도 굳기 전에 얼렁 먹어야 참묵인갑다. 그외 시간에 얼쩡거리는 건 통행금지 이후 거리에서 설쳐대는 지랄인갑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