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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리 <외투>

미송 2014. 8. 31. 09:53

 

 

 

▲ 외투 | 고골리

 

고등학교 시절 교내 백일장에서 상으로 받은 책이 붉은색 하드커버로 된 5권짜리 <러시아 문학전집>(을유문화사)이었다. 나는 그 책 속에서 내게 영향을 끼친 한 편의 소설을 발견하게 된다.

고골리의 ‘외투’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찬탄과 경배의 언급을 남긴 러시아 리얼리즘 소설의 교본이다. 두툼한 중편소설의 분량 대부분이 하급 말단 필경사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극사실주의적인 문체로 촘촘하게 표현한다. 그러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지독한 구두쇠로 살면서 마련한 한 벌의 쉬녤리 외투가 곧 삶의 전부인 양 제시된다.

그러나 평생 모은 돈으로 구입한 쉬녤리 외투는 상관이 베푸는 파티장에 가다가 밤길 공원에서 괴한에게 어이없이 탈취당한다. 어둠 속에 불쑥 나타난 괴한은 덩치만큼 큰 주먹을 눈앞에 대고 흔들며 말한다. “벗어!”

어이없게 외투를 빼앗긴 아카키예비치는 파티장에서 도둑맞은 자신의 외투에 대해 하소연한다. 그러나 파티장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그의 외투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결국 울화통이 터져 죽어 버린다. 여기까지에 두툼한 중편소설 대부분의 분량이 할애된다.

극적인 반전은 아주 짧은 에필로그처럼 표현된다. 어느 날 공원에 남자 귀신이 등장한다. 몸은 왜소하고 처량하게 생긴 남자 귀신인데 그가 내미는 주먹은 엄청나게 크다. 죽은 아카키예비치가 귀신으로 나타나 큰 주먹을 흔들며 소리친다. “벗어!” 값비싼 쉬녤리 외투를 입고 공원을 지나던 사람들은 혼비백산 외투를 벗어던지고 줄행랑을 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박장대소했다. 그러면서 벌떡 일어섰다. “그래, 이 세상에 큰 주먹을 들이대는 귀신이 되리라!”

 

 

이윤택 | 극작가·연출가

 

 

 

그의 지위로 말하면(우리나라에선 뭐니뭐니 해도 관등부터 먼저 밝혀둘 필요가 있으니까) 영원한 만년 주사(主事)라고나 할까. 반격을 가할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좋아하는 기이한 버릇을 가진 숱한 작가들의 노리개가 되게 마련인 직위 말이다. p56

 

국장과 과장들은 수없이 갈렸지만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만은 언제나 같은 자리, 같은 지위에서 똑같은 필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카키예비치를 현재의 자기, 말하자면 제복이라든가 대머리라든가 기타 모든 것을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그대로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p58

 

그러나 곯리기 좋아하는 장난꾸러기가 그의 팔을 치며 일을 방해할 때만은 그도 그 이상 참지 못했다. 그럴 때면,

"날 좀 내버려두지 못하겠소! 왜 날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요?"

하고, 화를 불끈 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할 때의 음성과 어조에는 이상한 특징이 있었다. 동정심을 일으키게 하는 그 무엇이. 새로 들어온 어느 청년은 딴 사람이 하는 대로 그를 놀려대려다가 갑자기 급소를 찔린 것처럼 장난을 그만두고 말았다. p59

 

타이핑 | 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