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in 에세이

김용오님을 응원하겠습니다.

미송 2014. 9. 9. 13:26

 

 

 

 

라디오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택시 안에 퍼졌다.

“여당인 새누리당과 세월호 유가족이 만난 지 30분 만에 특별법에 대한 입장차만 확인한 채 협상이 결렬됐습니다.”

택시기사가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님은 세월호 특별법을 어떻게 보세요?”

“적당히 하고 이제 그만해야지. 지금 경제가 어려운데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거야. 자식 죽은 심정이야 이해하지만, 지금 다들 먹고살기가 힘들잖아요. 듣자하니 유족들이 받는 보상금만 수천억원이라는데, 그게 다 우리 세금이잖아요. 민주당도 국회에 들어가서 할 일을 해야지, 거리에 나와서 저러고 있는 게 정치인이 할 일이야? 지금 빨리 법안 통과 안 시키면 유병언이에게 돈 못 찾아서 또 수천억원을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한다며.”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보상이 아니라 진상조사라고 하던데요?”

“그러니까 저 사람들 그만 나서게 정치인들이 제 할 일을 해야지. 거리에나 나오고 말이야. 이젠 좀 빨리 정리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내 먹고살기가 바빠서 관심 가질 여유도 없어. 손님. 동부병원 다 왔어요.”  <한겨레 뉴스 9월 4일자 김용오님에 관련된 기사>

 

 

직장인(?)으로서 추석 연휴를 5일 씩이나 가질 수 있으니 나는 추석 난민이 아니고 추석 귀족에 속하나. 그러나 난, 거저 쉬라는데도 쉬는 것이 참 지루하다. 돈이 없어서 자유롭게 나댈 수도 없으니 참 난감하다참 귀족적 분위기의 추석 명절이다. 김용오님은 또 어떻게 추석을 넘기고 계신가 궁금했다다음 검색창에 이름 석 자만 치면 그의 과거 현재 그리고 그의 욕설까지 쫙 펼쳐진다. 어쩌다 욕까지 했을까. 지리멸렬한 사람들은 그의 욕설을 꼬투리 잡고 늘어진다. 참 비겁한 사람들 같으니라구. 싸움의 본질을 흩으리며 진액빼기 하는 게 너희들의 싸움법 아니었니, 나는 김용오님 보다 더 긴 욕설을 내뱉는다. 왜 욕을 했느냐 떠들기 전에 왜 욕이 나오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들은 항상 곁다리 잡고 시간을 끌며 지긋지긋 지리멸렬 지쳐가게 만드는 것을 공식처럼 사용해 왔다개념이 다르고 의식수준이 서로 다르니 사실 해답은 요원하다. 싸움은 길어질 수밖에 없고 지리멸렬을 싫어하는 쪽이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라질 수 없다. 왜냐생명을 가운데 놓고 흥정할 수 없으니까. 비록 저쪽에서 인간의 생명을 놓고 돈으로 계산한다 해도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식의 생명을 돈으로 계산할 수 없으니까. 싸워야 한다. 진실이라는 생명을 얻을 때 까지목숨을 담보로 한 보이지 않는 투쟁, 자본주의와의 지리멸렬한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먹고 살기가 바빠서, 이웃의 죽음을 얼른 외면하고서 살다보니 어느 날 내 자식이 그 죽음의 수렁에서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미 내 자식도 그들의 절차의 레일위에 서 있는 게 아닌가나도 엄마이기에, 이 뭣(?)같은 나라 안에서 이어나갈 두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자다 깨도 우울해 진다추석에 해외여행 나갈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기에 슬픈 것이다. 내 배 부르고 등 따순 게 최고여, 하는 국민의식으로는 결코 자칭 기득권자들의 저 지리멸렬한 불통의 암벽을 깨트릴 수 없다

 

각자도생의 슬픔을 역설하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서 나 한 사람은 어떻게  한 사람의 마음과 의식을 지켜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깨어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 하나의 마음과 의식을 지키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에 말이다. 더불어 나와 같은 뜻을 말하는 자, 대표자로서 싸우는 자를 꾸준히 응원하는 일이 과제이겠다. 김용오는 이제 그만의 이름이 아니다. 그를 영웅시하잔 뜻이 아니라 그의 울부짖는 본심을 응원하잔 뜻이다. 더 이상 왜곡하지 말고 직시하자. 나는 보상금이란 돈 보다 자식의 생명이 귀중한 사람이다. 지금 내 자식이 멀쩡해서 괜찮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당신 자식이 저렇게 죽었다면 그때도 그렇게 말하겠느냐 고아직은 자기 자식 멀쩡하다고 그렇게 사둔 남말 하듯 빈정대면 못 쓴다. 당해 봐야 알 것이 따로 있기도 하겠지만, 당하지 않고도 충분히 동병상련할 수 있는 모정이란 것도 있지 않는가. 몇 해 전 이상 문학상 대상작이었던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에 적힌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녀가 글쓰기를 하게 된 동기와 목적은 '억울함' 때문이었다 고 했다나는 그때 속으로 답변했었다. 내게도 글쓰기의 동기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소통>입니다우리는 얼마나 각자의 목적을 성취하며 사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도 믿는다. 김용오님의 몸부림의 과정이 곧 우리의 몸부림이며 장마처럼 지난한 물기로 얼룩져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서늘한 고도에 닿을 것을. 그것은 우리 아들들의 몫이기도 하며 아직 살아 있는 부모 세대의 책임이기도 한 것이어서, 나는 오늘도 생명과 진실을 부르짖는 그들의 착한 그림자를 붙좇는다. <오정자

 

 

 

우리 동네 원창묵 시장님이 건축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아기자기한 공원이니 곳곳

교차로 그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덕분에 수변공원에 올라가 달맞이를 했어요. 

아름다운 날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원더플 데이 해피 나잇-!

 

 

원두커피 잔 속에도 생맥주 잔 속에도 염원을 담아 마시곤 하죠. 잘 살아야죠,

잘 견뎌야죠, 비록 저 프레임 속에 달빛은 온데간데 없고 가로등 불빛만 보여도

달이 여전히 저 밖에 있을 것을 믿듯, 잘 사랑해야죠.....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