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지대와 딸
변비지대와 딸
노심초사(勞心焦思)의 나무가 이파리를 내밀고 팔을 벌렸다. 중학교 3학년 때의 모습만 기억되는 딸아이가 이번에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명문은 아니지만 그럴듯한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누님의 말씀이다. 실력이 있어서는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여러 군데에 지원을 하다보면 입학을 포기한 학생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 아래 대기하던 선순위부터 입학할 수 있는 절묘한 타이밍을 잡았다는 것이다. 아이 엄마가 일부러 누님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소식을 전한 것은 나에게 묘한 느낌을 던졌다.
아이 엄마는 늘 우회적으로 누님을 통해 아이들의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이혼 후에 전화 한 통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한테 까지 발을 끊어버린 나의 냉정함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나 못지않게 아이 엄마에게도 꿋꿋한 자존심이 있어서일까? 사실 나는 어설픈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확고한 아버지가 아니면 아예 없어져 버린 아버지로서의 단호함을 보여, 성장하면서 느낄 고뇌를 차단해 버리려는 뜻도 있었다. 물론 영원히 원망스런 기억으로 자식의 뇌리에 남을 각오는 했었다.
또한 아이 엄마와의 관계도 그랬다. 어차피 상처 난 상대방이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싶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될 수 있으면 빨리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의미와 헤어지면 남보다도 못한 사이지만 최소한도의 예의를 지키려는 뜻에서 냉정했던 것이다. 한꺼번에 잘려 나가던 통증을 혼자 끌어안다보니 그 모든 것이 극도의 자기모멸감으로 나를 괴롭혔다. 모멸감을 절대로 과거에 연결시키거나 남에게 전가시키지 않으려 애썼다. 이런 내 노력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것도 사실이지만, 마음 밑바닥에는 아직도 꺼지지 않은 군불이 연기를 내며 안으로 타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덧 다 자라버린 아이들, 그것이 꺼지지 않는 군불일 것이다. 딸아이는 언론학과에 입학했다고 했다.
“언론학과요? 그 녀석이 아비의 비리를 폭로하려는 게 아냐?”
도둑놈이 제 발 저리다고 대뜸 내 입에서 튀어나온 이 소리, 무심결에 말을 던져놓고 갸웃했다. 이름 석 자만 물려주고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내가 아닌가, 자식 앞에서 얼굴 들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인 줄 어찌 진작 알았으랴, 자식의 가슴에 그늘을 던진 죄가 가볍지 않다.
언론이란 어둠을 밖으로 드러내는 직업이다. 만약에 딸이 그 분야에서 재능을 보여 날카로운 펜을 휘갈긴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제 엄마의 고통스러웠던 나날을 일일이 증거로 제시하며 무정하기만한, 소식 하나 없는 아버지를 짓이기고 뭉기고, 토막토막 내어 글로 쫙 펼쳤을 때 드러난 처량한 내 모습, 삼단논법으로 이리 걷어차고 저리 걷어차도 할 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낑낑 신음소리도 못 낼 형편이 아닌가, 참 기막히다. 어찌 살아왔기에 분명히 내 아래로 뻗은 핏줄마저 두려워 이런 지경이라니, 그렇다고 제발 재능을 보이지 않기를 바랄 수도 없는 남과 똑같은 아비의 입장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그저 재능만 보여라. 누구의 손에만 죽으면 최고로 행복하다는 일도 있다. 먼발치에서 무엇 때문에 내가 노심초사했으며 눈 매운 군불의 연기를 지펴왔는가,
얼마 전에 화장실에 갔다가 혼난 일이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걸려본 일이 없는 변비를 경험했었다. 배고픈 일만 슬픈 줄 알았는데 배부른 것을 제대로 빼지 못하는 것도 아주 슬픈 일이란 것을 처음 깨달았다. 좌변기에 점잖은 자세로 앉아 끙끙대다가 좌변기 위에 발을 올려 쪼그리고 앉아 조마조마하게 끙끙대다가, 머리를 쥐어뜯고 벽을 붙잡고 허리를 틀다가, 좌변기에 걸쳐진 둥그런 받침대도 부러뜨리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서 빼기를 포기하고 나왔다가 또 다시 쏟아 질 것 같아서 얼른 화장실에 뛰어갔지만 막힌 순환은 뚫리지 않아, 이 놈의 세상이, 우라질 세상이, 먹기도 힘든데 빼기도 힘든 이 아이러니가, 목메어 죽는 줄만 알았는데 밑창이 막혀 똥만 쌓이다가 죽을 이런 일이......
나중에는 화장실을 들락날락대며 올렸다 내렸다 하는 바지도 거추장스러워서 아예 홀딱 아래를 드러낸 이상한 모양으로 거시기까지 달랑달랑 흔들며 뛰어다니다가, 드디어 일을 성사시키고 말았으니, 밑창이 찢어지며 핏방울이 우중충한 그 원수의 머리위에 뚝 떨어졌던 것이다. 아무리 힘들게 먹어도 피를 보면서까지 배부르지는 않았는데, 몸속의 것을 공짜로 내주는 일에 피를 보다니 참으로 절묘한 인생살이다. 병원에 달려가 치료를 받았지만 혈압이 오를 대로 올라 뒷골이 뻑뻑했었다.
아, 이 서글픈 변비인생.
그러나 돌고 돌다보면 만날 수도 있다. 긴 세월로만 여겨져 그렇게 지루했던 아빠와 딸의 변비지대가 날카로운 딸의 펜 끝에 난도질당해 비록 내가 피를 흘린다 해도 아름다운 낙화일 뿐이다. 경쾌하다. 이제 다 커서 비수를 아빠의 가슴에 들이댈 수도 있다니, 그 또래로 보이는 처녀를 유심히 쳐다보는 눈길에 딸아이의 모습 초롱초롱 겹친다.
2006, 12월 이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