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안현미 <음악처럼, 비처럼>

미송 2014. 11. 6. 21:36

 

음악처럼, 비처럼 / 안현미


 새춘천교회 가는 길 전생처럼 패랭이꽃 피어 있을 때
 흩뿌리는 몇 개의 빗방울 당신을 향한 찬송가 같았지
 그때 우리에게 허락된 양식은 가난뿐이었지만
 가난한 나라의 백성들처럼 가난하기에 더 열심으로
 서로가 서로를 향한 찬송가 불렀었지
 누구는 그걸 사랑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지만
 우리는 그걸 음악이라고 불렀지
 예배당 앞에 나란히 앉아 기도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담뱃불을 붙여줬던가
 그 교회 길 건너편엔 마당에 잡초 무성한 텅 빈 이층 양옥집도 있었던가
 그 마당에 우리의 슬픔처럼 무성한 잡초를 모두 뽑고
 당신의 눈썹처럼 가지런하게 싸리비질하고 꼭 한 달만 살아보고 싶었던가
 햇빛 좋은 날 햅쌀로 풀을 쑤어 문풍지도 바르고 싶었던가
 그렇게 꼭 한 달만 살아보자고 꼬드겨보고 싶었던가
 그럴까봐 당신은 이 생에 나를 술래로 세워놓고 돌아오지 않는 기차를 탔던가
 춘천을 떠나는 기차 시간을 기다리다 공지천 '이디오피아' 창가에 앉아
 돌아오지 않은 당신의 눈썹에서 주워온 몇 개의 비애를 안주로 비루를 마실 때
 막 사랑을 하기 시작한 연인들의 백조는 물 위에서 뒤뚱뒤뚱,
 그 뒤뚱뒤뚱거림조차 사랑이라는 걸 이제는 알겠는데
 아직도 찬송가처럼 몇 개의 빗방울 흩뿌리고 있었지
 누구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우리는 그걸 음악이라고 불렀었지

 

안현미 시인의 시는 진솔합니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치유되는 느낌을 받게 되지요. 이 작품은 가난했던 젊은 시절의 사랑을 담은 시입니다. 시인은 춘천 어느 교회 가는 길에 마음을 두고 온 것 같습니다. “슬픔처럼 무성한 잡초를 모두 뽑고” “꼭 한 달만” 같이 “살아보고 싶었던” 그 사람은 “이 생에 나를 술래로 세워놓고 돌아오지 않는 기차를” 타버렸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시인은 다시 춘천에 갑니다. 그리고는 홀로 춘천을 떠나는 기차를 기다리지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추억하는 시인 곁을 “막 사랑을 하기 시작한 연인들”이 지나쳐갑니다. “찬송가처럼 몇 개의 빗방울”만 그를 적시고 있습니다. <시인 최형심>

 

 

 

'예배당 앞에 나란히 앉아 기도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담뱃불을 붙여줬던가' '돌아오지 않은 당신의 눈썹에서 주워온 몇 개의 비애를 안주로 비루를 마실 때'

압권인 문장이다. 진솔은 역시 빡시다. 20~30년 전 얘기인데 오늘날 20~30대들의 현실 같으다. 결혼하고 싶어도 애 하나 더 낳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참,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걸 음악이라 불렀다니, 대견하다, 파워풀한 시에게 박수를 띄운다. 시인 백석은 그의 산문 '동해'에서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신다고 운을 떼곤 했는데, 시인 안현미는 비애를 안주로 비루를 마셨다, 고백을 한다. 검소한 요즘 사람들 치맥이나 편맥을 즐긴다는데, 아무튼 두 시인의 삐루가 땡긴 건, 몇 개의 빗방울이란 추가 안주 때문일까. 그렇다 치고, 새춘천교회란 간판이 영 촌스러워 못마땅스럽다. '뉴새마을 부녀회'란 간판처럼 그렇고 그런 제목 같아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