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
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 / 김경주
불을 끄고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 창문을 잠시 두드리고 가는 것이었다
이 밤에 불빛이 없는 창문을
두드리게 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아직 떠난 것이 아닌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문득
내가 아닌 누군가 방에 오래 누워 있다가 간 느낌.
이웃이거니 생각하고
가만히 그냥 누워 있었는데
조금 후 창문을 두드리던 소리의 주인은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들을 두드리다가
제 소리를 거두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곳이 처음이 아닌 듯한 느낌 또한 쓸쓸한 것이어서
짐을 들이고 정리하면서
바닥에서 발견한 새까만 손톱 발톱 조각들을
한참 만지작거리곤 하였다
언젠가 나도 저런 모습으로 내가 살던 시간 앞에 와서
꿈처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를 어룽어룽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이 방 창문에서 날린
풍선 하나가 아직도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어떤 방(房)을 떠나기 전, 언젠가 벽에 써놓고 떠난
자욱한 문장 하나 내 눈의 지하에
붉은 열을 내려 보내는 밤,
나도 유령처럼 오래전 나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3년 전, 힘겨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을 때 만난 보르헤스, 보르헤스만큼이나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시인을 예감한 건 최근 일이다. 여행 산문집 패스포트에 나오는 '국경 꽃집'이나 몇몇 '에테르에 관한 명상' 그 외 인터뷰 내용에도 매료가 되었다. 나의 수필에도 인용했던 보르헤스의 '타인' (깨어 있는 상태에서 현재의 나와 또 과거의 내가 대화하는)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기시감이 드는 K의 시 속에는 장자의 호접몽이 녹아있다. 사라지는 것들을 향한 연민의 눈(目)속에서 독자는 거대한 이의 꿈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완벽한 합일까지는 아닐지라도, 시를 읽는 순간만큼은 기나긴 스침이 느껴진다. <2010, 오>
20141108-2015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