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김규진<사과나무에게 묻다>

미송 2015. 2. 17. 23:22

 

사과나무여
너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네 영혼은 너의 사과를 어떻게 붉게 만드는가?

 

오가는 길옆에 사과나무가 있어
언제나 나는 물었다.
아침의 안개로
비틀거리는 저녁의 발걸음으로

 

사과나무여
너에게는 뛰쳐나가야 할 출근도
안고 돌아와야 할 지폐도 필요 없겠지만
너에게도 견뎌야 할 무엇이 있어
새들의 둥지를 두드리거나
바람의 팔을 붙들고 울기도 하는가?

 

지쳐 등을 기댈 때마다 너는
수천의 잎사귀를 헤집어
달빛 새긴 잎사귀 두어 개를 떨어뜨리지만
네가 새겨놓은 말들은 너무 깊숙해
나는 읽을 수 없다.

 

어떤 슬픔으로도 그려낼 수 없을 것 같은
연분홍 꽃무리
그저 눈부시기만 한데
사과나무여.
너도 스스로에게 묻기도 하는가?
그곳에 네가 왜 서 있는지
왜 사과를 만드는지
너의 사과를 누가 가져가는지.

 

네가 온종일 바람 속에 있는 것처럼
나 역시 바람 속에 있다.
비틀거림으로 거센 바람 속을 더듬어갈 때
사과나무여.
너도 때로
나에게 묻기도 하는가?

 

나에게도 영혼이 있는지
내 영혼은 나의 사과를 어떻게 붉게 만드는지

 

 

— 김규진 〈사과나무에게 묻다〉(《작가세계》 2014년 겨울호)

 

 

아름다운 시다. 화자의 내면적 삶의 깊이와 고독한 영혼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나는 아직껏 나무를 보고 생각은 했을지언정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는 못했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 시가 긴 사색의 흐름 뒤에도 자신이 사과나무에게 물은 것을 사과나무로 하여금 자기에게도 묻게 한, 그 수미상관의 균형감 또는 완결성을 잊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든다. 그 사이에 울리는 시적인 언어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방민호>

 

 

 

요즘, 아이들끼리 하는 말, '영혼 없는 것 같은 이...'는 말이 있다. 정신이 외출했단 뜻과 비슷할까영혼이라 하 왠지 그 보다 한 차원 높은 듯 싶기도 하고 아닌 듯 싶기도 하고 아무튼, 사과나무와 대화를 나누니, 영혼을 믿는다고 믿어 온 나 같은 사람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얼마나 외로워져야 사과나무와도 속을 트고 지내지, 추억하자니 사춘기 시절 나도 저 시인처럼 나무와 별과 구름과 속을 트고 지냈던 것도 같다. 외로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 끝없이 피어오르던 공상 그리고 세상을 많이 딛지 않아 그나마 순수했던 발, 그것이 소통의 조건이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