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이기철
내 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앉아 기다렸다
병은 연인처럼 와서 적처럼 깃든다
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을
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
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
낯선 골목 헤맬 때
등신아 등신아 어깨 때리는 바람소리 귓가에 들린다
별 돋아도 가슴 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꽃잎 지고 나서 옷깃에 매달아 둘 이름 하나 있다면
아픈 날들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 가자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
아,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삶보다는 훨씬 푸르고 생생한 생
그러나 지상의 모든 것은 한번은 생을 떠난다
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까
이 흙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 때까지
병을 사랑하자, 병이 생이다
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 우리
무엇으로 밥 먹고 무엇으로 그리워 할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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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그리운 병은 불치병입니다. 그 병이 우리 몸에 들어올 때는 달콤한 연인의 모습으로 오지만 일단 한 번 들어오면 적처럼 우리를 징그럽게 괴롭히며 몸을 상하게 합니다. 그 그리움은 결국 치유되지 못해서 지병이 되고 말지요. 시인은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면 차라리 “병을 사랑하자”, “병이” 곧 “생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아름다운 생명으로 만들어 주는 그 병, 다들 앓고 계신가요? <시인 최형심>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나 그 나열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시를 읽자니 지복(至福 bliss)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처럼 당신과 나만이 아는 더할 것 없는 기쁨이란 뜻일까요. 어찌할 수 없을 땐 가만히 누릴 줄 알아야한다 는 의미의 지복을 한때도 지금도 좋아합니다.
또 지병이란 말로 스스로를 얼레고 달래던 시절도 있었던가 합니다. 이웃과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젊은 감성을 오로지 신께만 올리려 했을 때의, 수직의 도도한 나무였을 때의, 일로 기억됩니다.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 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 란 시인의 겸허한 표현에 고개가 저절로 수그러드는 지금은, 열네 살 소년의 오글거리는 너스레에도 마냥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 완벽한 행복도 지독한 병도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요즘이라서, 전 그냥 이것 자체가 생이려니, 죽음 앞에 잠시 놓였다 부서지는 생이려니 하는데요. 성격이 운명(Character is fate)을 만든다 고 한 셰익스피어도, 운명과 한 몸이 되어야만 운명이 당신을 지배하지 않고, 당신이 운명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한 루이제 린저도 김일성도, 그들은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생의 한 가운데 그대와 내가 있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