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기철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미송 2015. 2. 24. 07:31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이기철

 

 

내 몸은 낡은 의자처럼 주저앉아 기다렸다
병은 연인처럼 와서 적처럼 깃든다
그리움에 발 담그면 병이 된다는 것을
일찍 안 사람은 현명하다
나, 아직도 사람 그리운 병 낫지 않아
낯선 골목 헤맬 때
등신아 등신아 어깨 때리는 바람소리 귓가에 들린다
별 돋아도 가슴 뛰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꽃잎 지고 나서 옷깃에 매달아 둘 이름 하나 있다면
아픈 날들 지나 아프지 않은 날로 가자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
아, 나는 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삶보다는 훨씬 푸르고 생생한 생
그러나 지상의 모든 것은 한번은 생을 떠난다
저 지붕들, 얼마나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을까
이 흙먼지 밟고 짐승들, 병아리들 다 떠날 때까지
병을 사랑하자, 병이 생이다
그 병조차 떠나고 나면, 우리
무엇으로 밥 먹고 무엇으로 그리워 할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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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그리운 병은 불치병입니다. 그 병이 우리 몸에 들어올 때는 달콤한 연인의 모습으로 오지만 일단 한 번 들어오면 적처럼 우리를 징그럽게 괴롭히며 몸을 상하게 합니다. 그 그리움은 결국 치유되지 못해서 지병이 되고 말지요. 시인은 고칠 수 없는 병이라면 차라리 “병을 사랑하자”, “병이” 곧 “생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아름다운 생명으로 만들어 주는 그 병, 다들 앓고 계신가요? <시인 최형심>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나 그 나열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시를 읽자니 지복(至福 bliss)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처럼 당신과 나만이 아는 더할 것 없는 기쁨이란 뜻일까요. 어찌할 수 없을 땐 가만히 누릴 줄 알아야한다 는 의미의 을 한때도 지금도 좋아합니다.

 

또 지병이란 말로 스스로를 얼레고 달래던 시절도 있었던가 합니다. 이웃과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젊은 감성을 오로지 신께만 올리려 했을 때의, 수직의 도도한 무였을 때의, 일로 기억됩니다.

 

없던 풀들이 새로 돋고 안 보이던 꽃들이 세상을 채운다 란 시인의 겸허한 표현에 고개가 저절로 수그러드는 지금은, 열네 살 소년의 오글거리는 너스레에도 마냥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 완벽한 행복도 지독한 병도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요즘이라서, 그냥 이것 자체가 생이려니, 죽음 앞에 잠시 놓였다 부서지는 생이려니 하는데요. 성격이 운명(Character is fate)을 만든다 고 한 셰익스피어도, 운명과 한 몸이 되어야만 운명이 당신을 지배하지 않고, 당신이 운명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한 루이제 린저도 김일성도, 그들은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생의 한 가운데 그대와 내가 있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