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서영처 <그리고 또 유월>

미송 2015. 5. 31. 15:49

 

 

 

그리고 또 유월

- 나는 어리석고 조급했다

 

 

퇴근길 노점에서 장을 본다 검은 보자기를 젖히고 해를 처음 본, 한목소리로 깔깔거리는 콩나물을 산다 코미디 프로를 보며 다듬는 나를 힐끗, 아이가 내뱉는다 종일 콩나물과 씨름하고 또 콩나물이냐고, 그래, 난 음계 교본에서 솎아낸 한 움큼 콩나물을 다듬는다 벌레 먹은 대가리를 떼고 꼬리를 자르고 통통한 허리를 꺾는다 구시렁거리는 것들을 끓는 물에 데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혀진 듯 냄비 밖으로 삐죽이 내미는 다리, 슬며시 내놓은 대가리, 난 한 푼의 동정도 없이 다리를 잘라버린다 가차 없이 대가리를 날려버린다 무자비한 권력을 향해 내지르는 노오란 비명, 숨죽인 콩나물에 간을 하고 마늘을 찧어 넣은 다음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으로 무친다 일괄 생산한 매콤한 음악이 집 안에 진동한다.

 

서영처 / 2003년 《문학/판》으로 등단. 시집으로 《피아노악어》가 있다. 이번 시집에는〈한여름 밤의 꿈〉등 55편의 시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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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대가리를 갖고 놀던 꽁지를 갖고 놀던 예술인 역시 생활인이다. 오늘의 반찬은 뭐가 좋을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여자들마다 자문한다. 사실 그 나물에 그 밥이겠으나, 어쨌든 가족과 함께 먹는 식사는 혼자 먹는 식사와는 달라야 한다는 책임감, 무겁다. 만만한 게 콩나물 무침이던가, 콩나물과 무가 열나게 치고 받으면 누가 먼저 부러질까, 하는 농담도 가끔 떠올려지는, 이러한 요리는, 여자에겐 목적이기도 하나 때론 카타르시스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 즐거움에 빠져 본 여자들은 그래서 자긴 안 먹게 되더라도 그저 가족들 먹일 일념에 요리에 매달리기도 한다. 남자들 군대 얘기만큼 지루한가, 여자들 애 낳던 얘기 요리 얘기도.  암튼, 폴뤼페몬이라고도 불렸던 프로크루테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폴뤼페몬 침대 얘기가 콩나물 요리에 왜 튀어나오나. 알뜰살뜰 다듬었건만 왜 냄비 주변에서까지 정리가 필요하였나. 이쯤에 질문이 머물면 눈치 빠른 여자들은 알아챌 거다. 아하, 콩나물- ! 하고서.

 

누군가는 정의를 말하려 할 때, 폴뤼페몬 침대 우화를 인용하기도 하였더라만, 그 침대만큼 괴력 넘치고 슬픔 흥건한 침대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해서, 나 역시 기절할 뻔 한 것도 사실인지라,  한 때 드뷔시에 대한 음악 평론을 통해서 접했던 서영처님을 한층 자세히 보게 된  것, 아하, 콩나물- 맛있게 드셨기를, 하면서. 

 

휴전 상태의 국가적 과제를 상기해야 할 다시 또 6월, 나의 어리석음 또한 자성해야 할 6월로 접어들고 있다.

시나브로, 뜨거운 계절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