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퇴고실

미친 독배(獨杯)

미송 2016. 3. 5. 21:14

 

 

 

 

미친 독배(獨杯) / 오정자

 

음악이 흐른다

우리 곁엔 끝나지 아니할 이야기가 흐른다

비극의 종결로 시작된 영원한 사랑이 흐른다

바람이 부나 빠짐없이 밥을 먹으며 우리는 사랑의 전설을 나눈다

짝꿍들 이름 헷갈리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개정판 루소의 신엘로이즈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까지

 

바퀴벌레들 와르르 쏟아진다 그들

옛날 깐날 흘리고 간 7분간의 오르가즘을 재어본다

침 한번 삼키는 사이 몇 광년이 흘렀을까 

 

염병할, 욕 한번 지르는 사이 사랑은 메르스처럼 번져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에게로 흐른다

우리 집 식탁 위로도 속수무책 흐른다

식후엔 식탁을 닦는다

 

그 사랑 우리 집까지 배달될 수 있었던 까닭은 철저히 비극으로 끝났기 때문

그러므로 영원한 사랑은 비극적 종말을 전제로 한다 는 이상한 지론,

 

그나저나 호동왕자는 왜

자기를 돕고자 목숨 걸고 북을 찢어준 낙랑공주를 찾지 않았을까

묘하다 

 

그래서 사랑의 묘약은 이졸데처럼 마셔야 하는 것 

낙랑공주처럼 혼자 벌컥벌컥 마시는 건 미친 짓이다.

 

20150607-2016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