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반칠환,「봄 펜팔」

미송 2015. 7. 12. 16:07

 

 

봄 펜팔 / 반칠환

 

 

  올해도 당신이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편지쓰기교본을 베낀 듯 작년과 똑같은 내용이었습니다첫 줄엔 아지랑이 모락모락 안부를 묻고, 두 번째 줄엔 호랑나비 흰나비로 올해의 운세 물으셨죠. 그래도 눅눅한 겨울 다음엔 그만 한 위안도 없었습니다. 짐짓 눈 속 매화 한 점의 간결체로 시작된 당신의 문장은 점차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개나리의 만연체, 진달래의 우유체, 벚꽃의 화려체 따라 읽노라면 뭇벌과 새들 소리 시끄러워 눈 감고 귀를 막기도 했지요. 젊은 날엔 왜 그리 문장의 배후만 헤아렸는지요. 흰 꽃 속의 검은 빛, 꽃잎 속의 붉은 피, 순결 속의 타락, 환희 속의 비명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올해도 당신이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편지쓰기교본을 그대로 베낀 듯 언제나 똑같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왜 해마다 다르게 읽는 것인지요. 당신이 그린 봄 편지 속 삽화도 달리 보입니다. 작년엔 절벽에 핀 꽃잎이 금세 천 길 바닥으로 뛰어내릴 것만 같아 애간장 녹이더니, 올해엔 꽃잎이 절벽을 거머쥐고 훨훨 날아오르더이다. 저 꽃 다 날고나면 새로 받을 편지도 한결같은 초록의 문체이겠지요. 당신의 편지는 해마다 똑같지만 읽을 때마다 다른 것은 내가 늘 새로워지는 탓인가요, 다만 내가 늙는 까닭인가요.

 

 

월간 현대시학20146월호 발표

 

 

시가 참 다정하다. 퍼뜩하면 욕이나 하는 나 보다 낫다. 아니 비교하면 안 되는 건가. 편안하게 미소짓게 해 주고, 그래 아무래도 다 괘안아 하며 등을 도닥여주는 듯 한 시. 이 시를 쓴 사람은 남성인데 여성인 나 보다 훨 부드럽다. 왜 자꾸 나와 비교를 하려고 하나 하고 시인이 보면 꼴값이라 말 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자꾸 비교를 한다. 부럽기 때문이다. 어쨌든 포근한 시를 써 주셔서 고맙다. 시를 읽노라니, 늙는 다는 것도 과히 나쁜 것만은 아니다 란 생각이 마구 든다. 아무튼, 웃게 해 준 시에게 고맙단 인사를 올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