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호세 에밀리오 빠체꼬,「인터뷰를 거절하기 위하여 조지 무어에게 쓴 편지 」

미송 2015. 7. 25. 09:11

 

 

인터뷰를 거절하기 위하여 조지 무어에게 쓴 편지

 

                      호세 에밀리오 빠체꼬 (Jose'Emilio Pacheco )

 

 

친애하는 조지, 우리가 왜 글을 쓰는지 나는 잘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써 놓은 것들을 뒤늦게 출판하는지
가끔씩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것은
쓰레기와 메시지가 들어 있는 작은 병들이 가득찬 병 하나를
바다로 던지는 것입니다.
파도가 그 병을 어디 있는 누구에게 가져다 줄 것인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심한 풍랑에 쓸려 심연의
모래바닥, 죽음에 드러누울 것입니다.

하지만
조난자의 고난이 마냥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느 일요일
당신은 콜로라도 에스테스 공원에서 내게 전화를 겁니다.
당신은 내게 병 속의 메시지를 읽었노라고 말합니다.
(파도를 타고 우리들의 두 개의 언어가 만났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인터뷰를 신청합니다.
당신에게 내가 한 번도 인터뷰를 해 보지 않았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나의 희망은 누군가 읽어주는 것이지 축하해 주는 것이 아니며
텍스트가 중요할 뿐 텍스트의 저자는 중요치 않고
문학의 동아리를 싫어한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리고 나는 장문의 전문을 받습니다.
(이것을 보내는데, 친애하는 친구, 얼마를 지불해야 했는지요.)
당신에게 대답하기도 침묵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다가 이 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건 시가 아닙니다.
시의 특권을 꿈꾸지도 않습니다. (이건 자발적이 아닙니다.)
옛날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오늘 우리가 산문으로 이야기하는 모든 것
(이야기, 편지, 논문, 드라마, 역사, 농사정보)들의
도구로 이 시를 사용할 뿐입니다.

당신에게 대답하지 않기 위하여 말하겠습니다.
내게는 이 시에 있는 것 이상으로 덧붙일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에 논평을 하는 것도 흥미없고, 역사 속의
나의 자리(만일 나의 자리가 있다면)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쓸 뿐이고 그게 전부입니다. 내가 쓴다는 것은 시에
절반의 생명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시는 백지 위에 씌어진 검은 기호들이 아닙니다.
나는 타인의 경험과 만나는 장소를
시라고 부릅니다. 선남선녀들의 독자들이
내가 그저 스케치한 시를 완성할(혹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들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속에서 우리를 읽는 것입니다.
모르는 어떤 사람이 나의 거울에 보인다는 것이
나에게는 기적 같습니다.
이것이 가치가 있다면
페르난도 뻬소아가 말했습니다.

시의 저자에게가 아니라 시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운좋게 위대한 시인이라면
수많은 실패와 버려진 원고들 속에서
서너 개의 귀한 시를 남길 것입니다.
그의 개인적인 견해들은
실상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이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갈수록 시인들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시는 갈수록 관심에서 멀어집니다.
시인은 부족의 목소리이기를 그만두었습니다.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이기를 그만두고
시인은 흥행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도취, 간음, 병력(病歷)과
서커스의 광대들 혹은 마술사, 코끼리 조련사들과의
동맹과 불화는
더 이상 시를 읽어야 할 필요가 없는 이들을
광범위한 관객으로 확보했습니다.

나는 줄곧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시는 영원히 알지 못하는 두 사람 사이의
비밀스런 조약에만, 침묵에만 존재하는
사랑의 형태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반세기 전에
후안 라몬 히메네스가 익명이라는
시잡지를 발간하려고 했었음을 알고 계시겠지요.
익명에 실으려고 한 것은 시들이지, 서명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텍스트들로 이루어진 것이자, 저자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스페인 시인처럼 나도 시가
익명이기를 원하는데, 시가 집단적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시나 시 번역이 지향하는 바도 이것입니다.)
아마도 당신은 내 생각에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당신은 내 시를 읽었지만 나를 모릅니다.
우리는 영원히 만나지 않아도 친구입니다.
당신이 내 시를 좋아하신다면
내 것이든

다른 사람의 것이든

누구의 것도 아니든 무슨 상관입니까?
사실 당신이 읽은 시들은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은 그 시들을 읽으면서 그 시를 쓰는 것입니다.

* 페르난도 뻬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 : 포르투갈 시인.
* 후안 라몬 히메네즈Juan Ramo
n Jimenez(1881~1958) : 스페인 시인.

 

↑ 프리다 칼로의 작품 ‘코요아칸의 프리다’(종이에 수채). 1920년대 중후반에 그린 작품.

 

서간문 형식의 시론. 나는 문득문득 이 제목이 떠오르곤 하는데, 오늘 아침엔 시간이 좀 남아서 다시 뒤적여 본다. 변함없이 놀라는 것은, 뭔 글이 이렇게 틈서리도 없이, 똥차냐, 하는 점이다. 넘 완벽하게 말을 다 해 버려서 독자는 그저 구석탱이에 찌그러져 있어야 할 판. 글에선 징한 피냄새가 난다. 옥타비오빠스 안토니오마차도 가브리엘가르시아마르케스, 호르헤루이스보르헤스, 하여간 중남미 작가들의 이름은 길다. 철자를 잃어버릴까봐 오늘은 붙여쓰기를 한다. 어쨌든 라틴아메리카 계열의 문인들은 문학적 집요함과 성취력에 있어서 세계적인 종족들이다. 문득, 또, 쿠바 혁명의 리더 체게바라가 떠오른다. 프리다 칼로의 회화를 붙여둔다. 못 말리는 나의 연상작용이다. 20110812-20150725<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