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송
2015. 9. 13. 12:49

1
유홍초 꽃잎이 절정인가 했는데, 요 근래 떡잎진 이파리가 눈에 들어오고 있다. 성급히 '추醜' 하다, 내뱉으려다, 아, 가을이구나, 하고 만다.
2
새벽마다 요즘은 눈을 감은 채 비몽사몽 선잠 속에서 스트레칭을 한다. 어이쿠 아프네, 어이쿠 시원한가, 저녁에 줄넘기를 너무 많이 하였나 짚어보다가, 정신이 거의 돌아오는 오전쯤에선 아, 늙고 있구나, 깨닫는다.
3
대강 해 먹고 산다. 갈수록 외식만 늘어간다. 남들은 집밥 집밥 자랑하건만 나는 믿고 먹으면 그만이라 고집한다. 최근 옆집 할머니가 주신 막장은 소태. 두 달 간 기울인 정성을 자랑하기에 좀 얻자고 했는데, 장맛이 소태다. 그녀, 생긴 맘대로 맛도 나오는 걸까, 물으면 실례가 되겠지. 그러나저러나 나는 이제 김치 담글 줄도 모른다. 하던 짓도 자꾸 해야 느는 법. 작년엔 용돈 따로 드리고 할머니께 부탁한 오이지 한 접을 먹다 버렸는데, 엊그제 반찬가게에서 만난 오이지무침은 환상이었다. 열무김치랑 오이지무침이랑 고들빼기까지 샀지, 내 입맛에 맞으면 그만이니깐.
4
아이 '써'. 쓰다 고 하자, 뭐가 써? 라고 한다. 고들빼기...난 아직도 고들빼기를 할 줄 모른다. 한 며칠인가 물에 푹 담가 쓴맛을 뺀 후, 김치도 담그고 또 뭐 다른 것도 하고 그런다는데, 나는 고들빼기가 정말 어렵다고 느낀다. 그것은 아마 한번 쯤 실패했던 경험 때문일 거라 기억한다. 아무리 해도 쓰기만한 그 맛을 대체 뭐라 명명해야 할까, 의아했을 것이다. 할머니들이 쓴맛만 나는 고 고들빼기를 어떻게 그렇게 새콤쌉살하게 맛을 내시는지도 의아했을 것이다.
5
매일 먹는 김치처럼 가을이 식탁에 덜렁 올라앉았다. 어젯밤 만난 야외무대 위 락가수의 가로세로로 흔들리던 머리칼처럼 시러시러 조아조아 하며 가을을 씹고 있다. 고들빼기를 먹는 아침, 쓴맛도 여러가지 맛 중 한 가지라는 것을 터득하고 있다. 씁쓸하다. 쓰다. 써 너무 써. 그러나 그 맛이 얼마나 맛있는 맛인가? 이 가을 새삼 맛보고 있다.
6
지구라는 나무에 살고 있다. 거대하다면 거대한 나무의, 한 가지 끝에 붙은 나는 언제 떨어질지 모를 팔랑이는 이파리로 매달려 있다. 이젠 스무 살 남자 아이가 말을 붙여 와 15분 이상 주절대도 꼴 보기 싫어진다. 여자 친구들은 어딨니? 하고 슬쩍 또래에게 가라 종용한다. 똑같은 자원봉사를 했으니 족발 먹으러 내일 오라는 문자도 부담스럽다. 그곳에 가면 또 그 스무 살 아이의 얼굴을 마주치겠지, 하면서 슬쩍 빠질 계획을 한다. 어제는 예뻤고 오늘은 추하다. 추하다는 게 더러운 것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소원이 있다면 그 스무 살이 추녀醜餘시군요 보단 추녀秋女십니다, 말해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