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그 남자의 집에 가고 싶다

미송 2015. 10. 10. 09:00

 

 

 

 

 

그 남자의 집에 가고 싶다

 

 

오정자

 


작은 아들과 닮은 얼굴에 부쩍 호감이 간다. 몸짓 하나, 표정 하나까지도 친근하기만 하다. 남성미가 철철 넘치고 터프함이 영락없는 사나이인 송강호. 그의 영화를 꽤나 보았다. 공동경비구역, 살인의 추억, 효자동 이발사, 조용한 가족, 남극일기, 괴물, 최근에 본 우아한 세계, 이 외에 더 있을 거다. 시나리오에 따라 흥분이 오래가는 경우가 있는데, 우아한 세계는 찔끔거리고 끝내기에 주제가 너무 선명하다.

생존의 그물망을 뚫으려고 몸부림치는 한 가장家長의 눈물겨운 노력들. 그가 갖고 싶어 하는 우아한 세계를 그린 이 영화는, 조폭이라는 직업을 택하여 코믹하게 그리고 있지만, 보편적인 인생을 보여 주고 있다. 세상에 나가 싸울 땐‘어쩌면 저리 난폭할 수가...’할 정도이지만, 가족에게 돌아오면 순한 양처럼 눈치를 보다 꽁무니를 감추는 아버지.

 

어느 날, 사춘기 딸아이의 일기장에서 “조폭 아버지가 밉다. 다른 건달들은 싸우다 칼 맞아서 잘도 죽는다는데... 저 인간도 얼른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는 내용을 읽고, 그는 갈등한다. 다 알고서 결혼한 아내마저도 남편의 편에 서지 않고, 건달 일을 그만 두라고 종용한다. 그것은 이중적인 요구. 아들은 이미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고, 딸 역시 오로지 꿈꾸는 건 오빠가 있는 곳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것이다.

가족과 오순도순 오래오래 함께 사는 것이 송강호가 꿈꾸는 우아한 세계, 오직 그 목표 외에는 없다. 이왕이면 전원적인 분위기의 저택에서, 최소한 수돗물 콸콸 쏟아지는 주방이면 그만이라며 미소 짓는 촌스런 남자. 그의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장면들이 찡하게 쌓이다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허무와 반전은 우리 삶의 모습. 너무 슬퍼서 때로는 너무 기뻐서 죽을 것 같은 인생, 왜 인생은 이처럼 시시한 시詩같은지, 페이소스pathos인지.
자장면 집에서 죽마고우와 옛 여자 얘기로 서로를 놀리다가 물싸움까지 하는 천진난만한 장면에서는‘저런~'하는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일흔이 넘어도 아니 죽을 때까지도 여자이기를 꿈꾸는 여자들처럼, 남자들도 영원한 아이로 남고 싶어 하는지, 동심에선 늘 풋과일 냄새가 난다. 뜻대로 되지 않아 인생이라 한다는데, 꿈을 꾼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꿈이라 한다는데, 내게도 한때 우아한 자태를 주문하던 누군가가 있었던가. 목련도 아닌 자의 우아함이란 단잠 속 궁전에나 있을 것인데, 우아하다는 게 대체 무슨 맛일까 의문일 뿐인데....  

옥살이까지 하며 천신만고 끝에 꿈꾸던 전원주택을 가족들에게 선물하는 송강호. 가족의 열망은 곧 그의 열망이기도 하였기에, 집들이도 성대히 치르고, 제 방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하는 희극도 잘 연기한다. 그러나 웬일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덩그러니 라면을 먹고 있는 송강호의 모습만 관중들의 시야에 남겨진다. 동상이몽. 가족들은 이미 캐나다로 떠났고 주인공은 혼자 남았다. 기러기 아빠들의 울음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지루한 장면이 몇 번 겹치더니 드디어, 딩동 초인종 소리와 함께 닿은 비디오테이프 한 개.

아빠는 없어도 돼요, 돈 만 있으면 우린 우아할 수 있어요, 하는 가족들의 얼굴이 이국의 하늘 아래 진풍경으로 뜬다.

 

도대체 꿈은 왜 꾸었던 거니 바보야, 나는 울컥하고....

 

실실 웃던 송강호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가더니 라면 발은 더 이상 후루룩 넘어가지 않는다. 그래, 라면 맛이 어디 라면 맛이겠니, 엿 드세요 하지 않아도 엿맛이겠지.

 

막이 내려지기 1분 전, 송강호는 결국 냄비를 방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잠시 후 시커먼 봉지를 들고 와서 주섬주섬 라면 발을 주워 담는다. 그러다 이번에는 손에 쥔 걸레를 휘익 내던진다.

 

나머지 울음은 어디서 삼켰을까.

그 남자의 우아한 세계가 최불암의 허무시리즈처럼 끝나고, 다시 그 남자의 집을 떠올리던 나는, 검정고시를 치러 고등학교 졸업 자격증을 얻은 둘째 아들, 철딱서니 없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녀석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걱정을 한다. 10년 후, 가족의 진정성을 잃은 텅 빈 하우스House 에 앉아 있다면, 나는 과연 어떤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볼까. 상념에 빠지다 순간, 그 남자의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모성母性이 강하게 일어난다. 도발적인가? 그러나 어쩌나, 송강호가 너무 불쌍한데…….

 

20070419-201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