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조정권,『은둔지』

미송 2015. 10. 13. 00:14

 

은둔지 / 조정권  

        

시는 무신론자가 만든 종교

신 없는 성당

외로움의 성전

언어는

시름시름 자란

외로움과 사귀다가 무심히 큰 허무를 만든다

외로움은 시인의 은둔지

외로움은 신성한 성당

시인은 자기가 심은 나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

나는 나무에 목매달고 죽은 언어 밑에서

무릎 꿇고 기도 한다

시인은 1인 교주이자

그 자신이 1인 신도

시는 신이 없는 종교

그 속에서 독생하는 언어

시은市隱*하는 언어

나는 일생동안 허비할 말의 허기를 새기리라.

 

 *세속에서의 은둔

 

 

이해가 많이 가는 은유들. '나무에 목매달고 죽은 언어 밑에서, 무릎 꿇고 기도 한다'는 부분에선 킥~ 웃음까지 흘린다. 시은市隱하니 구약성서의 시은소도 연상이 된다. 나름대로 날카롭게 시를 벼린 느낌이다. 그러나 역설적인 나의 시론은 이렇다. 시는 신으로부터 이미 외면당한 언어. 신을 전제로 한 무신론도 유신론도 아닌 철저히 버림받은 언어 그 자체. 신성시 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종교도 성당도 성전도 갖지 않은. 현실로부터 왕따 당한 언어. 그래서 실존 자체이며 서바이벌인 시는 곧 죽을 것처럼 비실대지만 쉽게 죽지도 않는 생존 아니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서자庶子인 것이다. 시인은 시인이라 불리워질 때 시인이 되는 게 아니라, 시를 쓰는 순간 직관의 다리 저 너머의 언덕에 도달할 때 시인인 것. 황금의자에 앉은 자 시인이 되기 힘들 것이며, 배에 기름끼 낀 자 역시 그러할 것은, 시는 가난하고 슬픈 자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버림받은 자들의 외면당한 언어를 찾아 헤매야 하는 사람. 그 언어들은 언어들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 올 것이다, 정직한 시인의 자리 안으로, 신으로부터 외면당한 그 자리 안으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