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던지는 목소리의 울림
2015 노벨문학상이 우리 문학계에 던지는 의미
이맘때쯤 되면 노벨상 수상자가 하나 둘씩 발표가 나며 이목을 끌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흥미를 보이는 부분은 노벨문학상인 것 같다. 수상직후 서점에는 수상자의 책이 깔리고,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오르내리며 관심을 끈다.
올해 수상자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였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인식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삶을 보고, 그녀의 집필 방식을 보면 표절의혹으로 점철됐던 우리 문학계에 울림을 주기 충분하다.
끊임없이 던졌던 목소리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시와 산문을 기고하며 글쓰기에 관심을 보였던 알렉시예비치는 18살 무렵 지방 신문사에 취업하며 본격적인 자신의 글쓰기에 돌입했다.
벨라루스 국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알렉시예비치는 이후 민스크 지역 지방 신문사에 취직하며 본격적인 저널리스트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1976년에는 문학잡지 “네만”의 통신원에서 곧 보도부장으로 승격한 알렉시예비치는 같은 해 「나는 마을에서 떠났다」를 발표했으나 정부 정책을 비판한 내용이 문제가 돼 출판이 금지됐다.
저널리스트나 소설가의 형식에 얽매이기 보다는 에세이, 르포의 형식도 차용하며 글쓰기에 돌입한 알렉시예비치는 1983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이 아니다」를 발표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1985년 「마지막 증인」을 출판은 알렉시예비치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부의 등장과 함께 한결 자유로워진 분위기를 타고 TV, 라디오, 영화 시나리오와 연극 극본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다.
1989년 「아연 소년들 : 아프간 전쟁으로부터 울리는 소비에트 목소리」와 1993년 「죽음에 매료되다」를 발표한 알렉시예비치는 1997년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발표한다.
그러나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로 인하여 조국 벨라루스에서의 활동은 여의치 않았다.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대통령은 알렉시예비치에게 끊임없는 위협을 가했고, 알렉시예비치는 결국 벨라루스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3가지 목소리가 모여 만든 합창
알렉시예비치의 저서는 현장의 목소리이자, 다수의 목소리, 그럼에도 들리지 않던 개인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우리는 흔히 책은 시대의 ‘목소리’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알렉시예비치의 저서에서는 ‘목소리’라는 단어가 특별한 의미를 동반한다. 말 그대로 알렉시예비치에게 목소리는 글쓰기에 있어 초석을 다지는 작업이다.
알렉시예비치는 800만 크로나(한화 약 11억2천만 원)에 달하는 노벨문학상 상금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책 한 권 쓰는데 5∼10년씩 걸린다”며 “오직 한 가지, 나 자신을 위해 자유를 살 것”이라고 말했다. 책을 쓰는 집필 기간은 작품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에 대한 인터뷰에서 시작된다.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는 보병, 저격병, 의사, 간호사 등 다양한 역할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수백 명의 러시아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뤄졌다. 「아연 소년들 : 아프간 전쟁으로부터 울리는 소비에트 목소리」의 집필 또한 아프간 전쟁 참전군과 ‘아연 소년들’이라 불린 전사자들의 어머니들과의 500백 건 이상의 인터뷰가 바탕이 됐다.
알렉시예비치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를 발표하며 자신의 작품 장르에 대해 ‘소설-코러스’라고 칭하기도 했다. 어떠한 주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하나가 돼 울리는 하나의 합창과도 같은 것이다.
알렉시예비치가 이러한 장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알리게 된 데에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를 집필할 당시 벨라루스에서 활동하던 작가 알레스 아다모비치의 작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다모비치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스토리를 기획에 공동 참여한 영화 ‘컴 앤 씨(Come And See, 1985)’를 통해 추구하고자 한 방향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아다모비치는 전쟁 영화이지만 조용하면서도 어린 아이의 순수한 시각을 통해 경험자의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알렉시예비치가 이러한 장르를 구축하게 된 데에도 아다보미치가 보여주고자 한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이 이러한 장르를 추구한 이유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현실의 삶과 가능한 한 가장 유사하게 만드는 문학적 수단”이며 “현실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들과 고백들, 목격자들의 증거들과 자료들을 적는 이 장르를 곧바로 도용했다”고 밝힌바 있다. 더불어 이러한 방식은 “각 개인에게서 얼마나 많은 인간성을 찾을 수 있고 그 개인 속의 인간성을 보호”하는 작업이며, 이를 통해 자신은 “내 모든 정신적, 심리적 잠재력이 발현하면서 내가 작가, 기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설교자가 동시에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을 담당하는 한림원의 사라 다니우스 신임 사무총장 또한 “알렉시예비치는 저널리즘형식을 초월해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했다”면서 “그것이 진정한 성취”라고 평가하며 알렉시예비치가 노벨상을 받게 된 이유를 밝혔다. 다니우스 총장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에 대해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이에게 가장 가까이 데려다 줄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여성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연민’이라는 단어로 가장 잘 묘사된다. 물론 누나, 아내, 친구,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 엄마 등 같은 다른 단어도 있다. 그러나 ‘연민’은 이런 모든 개념의 일부분이지 않을까? 여성은 삶의 기부자다. 여성은 삶을 보호한다. 그래서 ‘여성’과 ‘삶’은 동의어다”며 자신의 감상을 밝히기도 했다.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목소리
알렉시예비치는 인터뷰를 통해 실제 삶과 유사하게 자신의 글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그녀가 쓰는 글의 소재 자체가 이미 삶과 밀접해있다. 처녀작이었던 「나는 마을에서 떠났다」는 당시 소련의 시골주민의 도시 이주 금지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에서 출판이 금지됐다.
공식적 첫 출판작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이 아니다」에서 알렉시예비치는 러시아에서는 ‘대조국전쟁’이라고 불리던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러시아의 영광에 먹칠을 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이 책에서 입을 연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전쟁 가담 경험을 털어놓는다. 여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은 전쟁 베테랑 군인이나 남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어온 이야기이다. 알렉시예비치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전쟁에 가려진 여성의 삶을 표현했다. 전쟁은 모든 이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전면에 나서 그 영광을 차지하는 것은 남성의 몫이다. 남성이 전쟁의 전면에 나서 총알을 주고받지 않느냐는 목소리는 이 책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심지어 총칼을 들고 싸웠던 것은 남성들의 몫만이 아니었다. 전쟁후의 삶도 남성과 여성은 달랐다. 여자들은 전쟁을 기록한 책이나 부상자들에 대한 서류를 숨겨야 했다. 다시 예쁘게 미소 짓고, 높은 구두를 신고,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여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전우였던 여자들을 잊어버렸고, 여자 전우들과 함께 거둔 승리를 빼앗고 독차지했다. 여자들의 전쟁은 잊혀버렸다.
국내에도 번역돼 소개돼 있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는 제목에서도 내용이 짐작되듯 체르노빌 참사의 영향을 받은 이들의 심리를 묘사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사고를 다루면서 그 사고의 모습이나 참혹성에 주목하기 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기록하는데 주력했다. 사고가 터지기 전, 삶의 터전을 체르노빌에 두고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겉으로 보이는 체르노빌의 참혹성 보다 더욱 냉혈하게 다가온다. 책 속에서 피폭돼 죽어가는 남편을 바라보는 여자에게 의사는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선 오염 물질’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막연히 떠올리던 체르노빌 사고의 이면성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외부의 시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한 독일 신문은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대해 ‘애도와 고발로 이뤄진 가공할 만한 진혼곡’이라 평가했고, 실제로 핵 사고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끔찍한 보고서로 이뤄진 이 책은 유사 시 전 세계 인류를 위한 지침서가 되었다.
「마지막 증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과 스탈린 시대를 겪어야 했던 여성과 어린이의 목소리를 표현했으며, 「아연 소년들 : 아프간 전쟁으로부터 울리는 소비에트 목소리」는 소련에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인 아프간 전쟁을 다뤄 법정에 서기도 했다. 2013년 출판된 최근작의 경우에서도 알렉시예비치는 최근 몇 년간의 사회적 격변을 겪은 이들의 정체성 모색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이렇듯 현실에 밀착한 소재를 다루다 보니 정치색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하다. 벨라루스에서의 활동이 제약된 이유도 이러한 알렉시예비치의 성향이 작용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러한 성향이 노벨상을 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Literature’의 의미
노벨상은 다분히 시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선정대상을 정해왔다. 그동안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을 선정한 이유를 들어보면 인간 내면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물들도 많다. 예를 든다면 ‘동방의 등불’로 유명한 타고르, ‘대지’의 펄 벅, ‘닥터 지바고’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등이 있다. ‘닥터 지바고’의 경우 러시아 혁명을 비판한 내용이 들었다는 이유로 소련 내부에서 잡음이 일었고, 이로 인해 파스테르나크는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당시 시기가 1958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기운이 상승하고 있던 시기임을 감안하면 민감한 수상자 선정이었다. 비슷한 사례로 1970년 수상한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이 있다. 솔제니친은 스탈린 하의 소비에트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을 담은 「수용소 군도」가 대표 작품으로 여겨진다.
최근 들어서는 탈식민지주의 계열 작가들의 수상이 눈에 띄고 있다.
2002년 수상자인 임레 케르테스는 강제수용소의 경험을 드러낸 『운명 없는 인간들』이 대표작이며, 다음해인 2003년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가지고 있는 모순과 인종주의, 그 원인이 된 서구문명을 비판한 존 맥스웰 쿠체에게 돌아갔다. 2010년 수상한 마리오 바르가스는 라틴아메리카의 대표 저항 작가이다.
이러한 정치성은 수상자들을 통해 현실을 환기하는 효과도 있지만, 노벨‘문학상’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정치성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노벨문학상은 스웨덴어로 Nobelpriset i litteratur, 영어로는 Nobel Prize in Literature로 표기된다. 여기서 Literature는 우리말로 ‘문학’이라고 표현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우리말에서 가지는 문학 이상의, 글 쓰는 모든 행위가 포함된다. 1927년 앙리 베르그송, 1950년 버트런트 러셀, 1953년 윈스턴 처칠, 1964년 장 폴 샤르트르 등의 수상자 면모를 보면 이런 성격이 드러난다. 결국 글을 ‘어떻게’ 표현하는 가도 중요하지만, 글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느냐도 중요한 선정 조건으로 볼 수 있다.
늘 이시기가 되면 언론에 나오는 단골 작가가 바로 ‘고은’시인이다.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수상자로 언론에서 얘기하며, 심지어 발표 날에 맞춰 집 앞에서 대기까지 했던 해도 있었다. 한글 특유의 맛을 번역하는 게 어렵다 등등 매년 반복되는 노벨상 탈락(?) 이유에 관한 얘기도 반복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먼저, 점수가 아닌, 심사단의 주관에 따르는 수상자 선정을 우리의 감성대로 예측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 물에서 우리끼리 장단을 맞추고 있다. 더불어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고은’시인의 이름이 일 년에 몇 차례, 언제 언급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올해 문학계를 달궜던 이름은 ‘신경숙’작가였고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 것이다.
노벨상은 생존자에 한해서 수여된다. 나날이 문학계 기반이 약해져 가고 있는데도 우리는 늘 문학계의 선임들에게 기대고 있다.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문학계가 문제라고 단순하게 여길 순 없지만, 이를 문학계에서 찾지 않는 현실은 문제로 남아 있다.
2015-11-17 시사뉴스투데이 김성화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