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자료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미송 2016. 1. 20. 18:35

 

 

월계수가 된 다프네

 

포이부스의 첫사랑은 페네오스의 딸 다프네였다.

그에게 이런 정염을 준 것은 눈먼 우연이 아니라

쿠피토의 잔혹한 분노였다. 얼마 전 뱀을 이긴 것을 아직도

자랑스럽게 여기던 델리우스는 쿠피토가 활을 구부리고

거기에 팽팽한 시위를 메우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이 개구쟁이 꼬마야, 전사들이 쓰는 무기가 네게 왜 필요하지?

그런 무기는 내 어깨에나 맞지. 나는 짐승이든 적이든

실수 없이 맞혀 쓰러뜨릴 수 있고, 얼마 전에는

독이 든 배로 여러 유게룸의 땅을 덮고 있던 부어오른 퓌톤을

수많은 화살을 쏘아 뻗게도 했단 말이야.

너는 횃불로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사랑에 불을 지르는 것으로

만족하고 내 명성에는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았으면 좋겠어."

베누스의 아들이 말했다. "포이부스여, 그대의 활이 무엇이든 맞히는

활이라면 내 활은 그대를 맞힐 수 있지요. 그리고 모든 동물이

신만 못한 그만큼 그대의 영광도 내 영광만 못하지요."

이렇게 말하고 그는 날개를 저어 대기를 뚫고 날아오르더니

재빨리 파르나수스의 그늘진 꼭대기 위에 자리잡고 서서

화살이 들어 있는 화살통에서 효력이 서로 다른 화살 두 개를 뽑았다.

하나는 사랑을 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을 불지르는 것이다.

 

사랑에 불을 지르는 화살은 날카로운 촉이 반짝이는 황금 화살이며

사랑을 쫓는 화살은 무디고 화살대 아래 납이 달려 있다.

쿠피토는 이 사랑을 쫓는 화살로 페네오스의 딸인 요정 다프네를,

다른 화살로는 아폴로를 쏘아 그의 뼈와 골수를 꿰뚫었다.

그는 즉시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이란 말을 듣기만 해도

도망을 쳤다. 그녀는 숲 속의 은밀한 곳들을 찾아다니며

사로잡은 짐승들의 전리품이나 즐기며 처녀신

포이베와 경쟁하려 했다. 어지럽게 흘러내리는 머리털을

머리띠로 질끈 묶고서 말이다.

구혼하는 자들이 많았으나 그녀는 구혼자들을 혐오하여 남자를

용납하지 않았고, 남자를 알지 못한 채 길 없는 숲 속을 쏘다니며

무엇이 축혼가고, 사랑이며, 결혼인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가끔 말했다. "딸아, 너는 내게 사위를

빚지고 있구나." "딸아, 너는 내게 손자를 빚지고 있어."

그래도 그녀는 그 고운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양

두 팔로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리며 말했다.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 영원한 처녀로 남아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디아나에게는 그녀의 아버지가 벌써 그렇게 허락해주었어요."

아버지는 그녀의 청을 들어주었다. 하나 다프네여,

그대의 그 아름다움이 그대가 원하는 바를 방해했으니,

그대의 외모가 그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던 것이오.

포이부스는 다프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는 원하는 것을 바라니, 자신의 신탁에

스스로 속은 것이다.

 

곡식을 수확한 그루터기들이 화염에 싸이듯이,

길 가던 나그네가 우연히 너무 가까이 놓았거나 아니면

날이 밝자 버리고 간 횃불들에 산울타리가 불타듯이,

꼭 그처럼 신은 사랑의 화염에 싸였고, 꼭 그처럼 신의 가슴은 온통

불길에 휩싸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희망으로 키우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목 아래로 어지러이 흘러내린 것을 보았다.

"빗질이라도 한번 했다면 어떠했을까?"

그는 그녀의 두 눈이 별처럼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보았다. 그러다가 이제 그는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그녀의 손가락과 손과 어깨까지

드러난 팔을 칭찬했고, 드러나지 않은 것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상상했다. 하나 그녀는 가벼운 바람의 입김보다

더 빨리 달아났고, 그가 불러도 멈춰 서지 않았다.

"요정이여, 페네오스의 딸이여, 제발 멈추시오!

그대를 뒤쫓지만 나는 그대의 적이 아니오. 요정이여, 멈추시오!

새끼양이 늑대 앞에서, 사슴이 사자 앞에서, 비둘기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독수리 앞에서, 온갖 생물들이 제 천적 앞에서나

이렇게 달아난다오. 내가 그대를 뒤쫓는 것은 사랑 때문이오

아아, 그대가 넘어져 아무 죄 없는 다리가 가시덤불에 긁혀

내가 그대에게 고통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두렵소.

그대가 달리는 이곳은 험한 곳이오. 제발 더 천천히 달리고

도주의 속도를 늦춰요. 나도 천천히 뒤쫓겠소. 하더라도 그대가

누구의 마음에 들었는지 물어보구려. 나는 산골 주민도, 이곳에서

가축 떼와 소 떼는 지키는 세련되지 못한 목자도 아니오.

그대는 모르고 있소. 성급한 소녀여, 그대는 모르고 있소,

그대가 누구에게서 달아나는지. 내가 누군지 몰라 달아나는 것이오.

 

델피 땅과 클라로스와 테네도스와 파타라의 궁전이

나를 섬긴다오. 옵피테르께서 나의 아버지라오.

미래사와 과거사와 현재사가 나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고.

나는 또 노래와 현(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해준다오.

내 화살은 어김없이 목표를 맞히지만, 내 것보다 더 확실히 목표를

맞히는 화살 하나가 근심걱정 없던 내 가슴에 상처를 입혔소.

의술(醫術)은 내 발명물이고, 나는 온 세상에서 구원자라고

불리며, 약초들의 효력은 내 손아귀에서 나온다오.

하지만 아아, 사랑을 치료해줄 약초는 어디에도 없고, 만인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도 그 주인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구려!"

그는 더 많은 말을 했을 것이나, 페네오스의 딸은 겁이 나서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말과 더불어 그를 뒤로한 채 계속 달아났다.

그럴 때조차 그녀는 매력적으로 보였다. 바람이 그녀의 사지를

드러내고, 마주 불어오는 바람의 입김이 달려오는 그녀의 옷을

펄럭이고, 가벼운 미풍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뒤로 휘날리게 하니,

그녀는 달아남으로써 더 눈부셨다. 젊은 신은 더 이상 감언이설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사랑이 시키는 대로 전속(全速)으로

그녀를 바짝 뒤쫓았다. 그 모습은 마치 탁 트인 들판에서

갈리아 산(産) 사냥개가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빠른 발로

먹이를 뒤쫓고, 토끼는 살기 위해 줄달음치는 장면과 같았다.

 

(바싹 따라붙은 사냥개는 드디어 잡게 되었다고 기대하며 

주둥이를 내밀어 토끼의 발뒤꿈치를 건드리고,

토끼는 벌써 잡힌 것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덥석 무는

사냥개의 이빨을 피해 자신을 건드리는 입으로부터 달아난다.)

꼭 그처럼 신과 처녀의 경우도 한 쪽은 희망으로,

다른 쪽은 두려움에 가득 차 더욱 빨리 달렸다.

하지만 쫓는 자가 사랑의 날개의 도움으로 더 빨랐으니,

그는 그녀가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그녀의 등 뒤에 바싹 따라붙어

목덜미 뒤로 흩날이는 그녀의 머리털에 입김을 불어댔다.

이제 달릴 힘조차 잃은 그녀는 안색이 창백해졌고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페네오스의 강물들이 보이자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저를 도와주세요! 만약 저 강물 속에 어떤 신성이

있다면 너무나도 호감을 샀던 내 이 모습을 바꾸어 없애주세요!"

그녀의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짓누르는 듯한 마비감 같은 것이

사지를 사로잡았다. 부드러운 가슴 위로 엷은 나무껍질이 덮였고,

머리카락은 나뭇잎으로, 그녀의 두 팔은 가지로 자랐다.

방금 전까지도 그토록 빠르던 발이 질긴 뿌리들에 붙잡혔고,

얼굴은 우듬지가 차지했다. 빛나는 아름다움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포이부스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나무줄기에 오른손을 얹어 그녀의 심장이

새 나무껍질 밑에서 아직도 헐떡이고 있는 것을 느꼈고,

나뭇가지들을 인간의 사지인 양 끌어안고 나무에 입맞추었다.

나무가 되어서도 그녀는 그의 입맞춤에 움츠러들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대는 내 아내가 될 수 없으니,

반드시 내 나무가 되리라. 월계수여, 내 머리털과 내 키타라와 

내 화살통에는 언제나 네가 감겨 있으리라. 

개선식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카피톨리움 언덕이 긴 행렬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너는 라티움의 장군들과 함께하게 되리라.

너는 또 아우구스투스의 문 앞에서 충실한 문지기 노릇을 하며

문설주 사이에 걸려 있는 참나무 잎 관을 지키게 되리라.

그리고 내 머리가 젊고 또 내 머리털이 잘린 적이 없듯이,

너도 네 잎의 영광을 영원히 간직하도록 하라!"

파이안이 말을 마치자, 월계수가 갓 태어난 가지들을 흔들고

우듬지를 움직이는데 마치 머리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였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54~61쪽, 타이핑 채란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오비디우스(기원전 43년~기원후 17년 또는 18년)는 로마사와 로마 문학사에서 흔히 '아우구스투스 시대'라고 부르는 시대와 함께 태어났으며

페르길리우스와 함께 로마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그의 <변신이야기>는 라틴 문학의 걸작으로 후세의 서양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 등 선배 시인이 세상을 떠나고 오비디우스가 로마의 문학계를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리던 어느 날

그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인 흑해 서안으로 유배를 간다. 그리고 그는 로마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오늘날의

시베리아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비참하고 쓸쓸한 만년을 보내다가 유배된지 10년 만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가 유배된 이유는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랑의 노래>(기원전 20년) <여걸들의 서한집>(기원전 1세기 말)

<사랑의 기술>(기원전 1년) <사랑의 치료약>(기원후 1년) <로마의 축제일들>(기원후 2년~?) <비탄의 노래>(기원후 8~12년)

<흑해로부터의 편지>(기원후12~16년)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