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시] 숨어있는 길
미송
2016. 4. 13. 09:36
숨어있는 길
오정자
문 하나 달지 않은 하늘이 별들을 쏟아 붓고 있었다
산허리를 핥듯 지나온 오후
여섯 개 구멍(六入)으로 향기 들락이고 있었다
견고한 어둠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순간
신(神)과 인간의 쇠사슬마저 끊어질 것 같았다
소박하니 유혹할 건 다 유혹하는 코스모스가 춤추고 있었다
자작나무 이파리 강물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초저녁별이 하늘 아래 꽃으로 피어올랐다
애마는 복부비만으로 헉헉,
우리는 외길에서 마주치는 차들을 보았다
삐끗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다
차의 지붕으로 스릴이 날아오르자
망각의 교차로가 나타났다 형식적인 지도책
眼, 耳, 鼻, 舌, 呻, 意로 다 경험할 수 없는 하늘이 아름다워
험산준령을 즐거이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치자빛 벼들이 여행자의 길을 안내해줄 것 같았다
가을 닮은 보시(布施), 미소가 빈들에 충만하였다
깨달음으로 달려가는 평화로운 보행
적멸 한 송이 든 우리는 목적지를 향하였다
그렇게 비포장도로를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