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정겸 <유서>

미송 2016. 5. 19. 09:28

 

 

 

/ 정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나는 전류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고독하다‘ 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아버지가 가출 했다

실종신고 석 달 만에
돌아온 것은 달랑 유서 한 장 이었다
검은색 비닐 봉투 속
꼬깃꼬깃 접혀 있는 색 바랜 종이에는
농협 통장의 비밀번호와
‘늘 바람과의 전쟁에서
겨우 살아 온 늙은 몸
손자에게 티비 채널권 빼앗기고
애완견에게 밥 먹는 순서마저 빼앗겼다‘ 라고 적혀 있었다

계간 『시인시각』 2011년 여름호 발표

 

 

요즘은 노인종합복지관에서 할배 할매들을 모아 놓고 이별수업을 한다고 들었다. 아리수. 아름다운 이별 수업이다.

연습할 수 있는 분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쁘지 않다. 인간을 숙연케 만드는 것에 죽음만한 소재도 없다. 시야 물론 상징적 의미를 말함이겠으나, 답답한 구석도 비친다. 요즘은 중고 티비도 흔하고, 애완견이랑 비교 같은 거 안하고 복지관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탁구도 하고 스포츠댄스 살사댄스도 추는 칠십 대도 흔하다. 혀 빼밀고 놀랄 광경을 그녀들에게서 가끔 듣는다. 구십 대 퇴직 교장선생님 뒤꽁무니에 줄 선 언니들 이야기. 연금과 자가용 소유자가 인기 순위 원. 어떻게 살아도 좋으니 부디 자살만은 하지 마시라, 교육하는 복지사들도 그들의 주변에는 흔하다. 늘어놓자면 흔한 것 투성이. 근데, 왜 죽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의 이유는 남은 자의 고독에 한 줄 질문을 남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