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우 <사이>
사 이/ 권정우
벼 포기가
자기 키 만큼 거리를 두고 서있다
혼자 서는 법을 배우려면,
쓰러져도
이웃한 벼를 다치지 않게 하려면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두루미가 개구리를 잡으러
지나가는 저 사이로
지난가을에
태풍이 지나고
거미들이 들락거리며
만 채도 넘는 집을 지었지
거미줄에 매달린 이슬이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이다
아름다운 생을 마감하는 사이
논두렁에 자전거를 세우고
벼 포기처럼 서서
바라보곤 했지.
엊그제는 자동차를 없앨까 하는 제안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걷거나 자전거를 구해서 타거나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에어컨을 틀고 쌩쌩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팔을 내밀고 바람을 느끼는 일도 기분전환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고, 그러나 이내 말해 버렸다. 거창한 구호나 명분들을 떼버리고 건물을 청소하는 일이나 지구환경을 조금이라도 덜 훼손하는 일을 하였으면 하다가도 다시 안주해 버리는 난, 순간이 도전이고 선택이지만 그 순간을 바꾸는 것이 나를 바꾸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고 늘상 걷던 길을 달리고 늘상 바라보던 곳을 바라보는 시 속의 화자는 참 평화로와 보인다. 그 곳에도 훵훵 사이를 두고 바람이 불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늘 저러한 문학적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마음가짐은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요즘 그 중요한 자세가 자꾸 흐트러지고 있다. 울밀한 숲 탓만 하기엔 너무 게을러지지 않았나 싶다.
어제는 배추 두 포기를 샀다. 가뭄 속에서 분투했을 농부들과 배추들을 생각하면 한 포기 8000원이라도 당연히 감수해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과감하게 김치를 담그기로 결정하고 장작 다섯 시간 배추를 주물렀다. 속도 별로 싱싱하지 않은 배추, 그러나 애지중지 다뤘다. 금치라서가 아니라, 꼭 먹어야 해서가 아니라, 농부들의 마음을 생각해서. 자연 앞에 서서 우두커니 자연이 되는 풍경 속 한 인간, 두루미와 개구리와 태풍과 거미와 햇살 사이에 우두커니 서서 한 포기 벼가 되는 사람은 오늘도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아주 오래 달리고 있을 것 같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