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강성은 <죽거나 망하거나 혹은>

미송 2016. 10. 7. 23:30

 

죽거나 망하거나 혹은 / 강성은 

 

은 줄로 알았던 선생님이

도서관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선생님은 죽은 것이 아니었구나

소문은 늘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다

선생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조금 아팠거나 조금은 죽어있었던 것이겠지

선생님은 나를 보자 놀라

커피를 떨어뜨린다

너는 죽은 줄 알았는데

그럴리가요, 선생님. 저는 이렇게 살아있어요

저는 선생님이 죽을 줄로만 알았어요

선생님은 내 손을 잡았다

죽은 줄로 알았던 사람을 만나다니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야

문득 죽은 친구 몇이 떠올랐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만나도

더 이상 놀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월간 『현대시학』 2014년 3월호 발표

 

 

성은시인  1973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창비, 2009)와『단지 조금 이상한』(문학과지성사, 2013)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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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이 곧잘 범하는 실수. 일반인들에게도 흔한 오류와 오독. 그런 것들이 점철되면 오해도 낳고 또 다른 불신도 낳고 불신은 이별의 꿈을 낳아 키우기까지 하고, 그러더라. 한마디로 미망迷妄에 쉬 빠지는 중생이지. 시인이나 독자나 생긴 모습대로 시를 쓰고 시를 읽는지도 모르지. 심플하나 깊고 부드러우나 날카로운 시맛이 시인의 눈매를 닮아 사뭇 무섭지. 그러나 나는 미소를 짓지. 저런 똑똑한 여자의 시를 좋아했었구나, 2년 전 어느 날의 시를 다시 펼치는데, 앙큼하게 상큼하게 꼬집는 야 정신 차려, 뭐 그렇게 소문에 들뜨고 떨어대니 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며 지나가지. 그대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아-아아아- 풍문으로 들었소 하는 장기하의 노랫가락도, 나는 한 개의 루머에 지나지 않았소 하던 최승자 시인의 비문碑文같은 싯구도 그냥저냥 지나가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