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데이빗소로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작가의 월든이라는 책과 시민불복종이라는 유명한 책이 두권 있다. 소로우는 간디와 마틴 루터 킹에게 크나 큰 영향을 끼쳐, 폭력을 거부하여 폭력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만들어 냈다. 소로우의 시민 운동에 대한 사유를 만날 수 있는 책이 바로 시민불복종이라는 책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에게는 두 가지 유명한 일화가 있다. 월든 숲 속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2년 동안 자급자족하며 살았던 일과 정부에 대한 불복종의 상징으로 인두세를 내지 않아 감옥에 간 일이다. 이 두 사건을 계기로 불후의 명작이 탄생되는데, 바로 <월든>과 <시민의 불복종>이다. 이 책들은 소로우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들로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가 더해가고, 전세계의 끊임없는 독자들을 새로이 각성시키는 글들이다.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서 생활하던 1846년 7월 어느 날 밤의 일이다. 경관이자 세금징수원인 샘 스테이플스가 그를 끌고 가 여러 해 동안 내지 않았던 인두세를 납부할 것을 정중하게 요청했다. 소로우가 거절하자 샘은 그를 감금시켰다. 다음날 아침 그의 고모 마리아가 세금을 대납해 주어서 풀려났지만 소로우는 그 하룻밤 동안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노예제를 묵인하고 멕시코와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미국 정부를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그 사건이 있고 2년 뒤인 1848년에 소로우는 콩코드 문화회관에서 그 투옥사건에 대해 강연을 한다. 그리고 그 다음해 나다니엘 호손의 처제인 엘리자베스 피바디의 요청으로 강연문을 다소 수정하여 그녀가 창간한 잡지 <미학>에 싣는다. 제목은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된다.
서양의 저술가 B. 다운스가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이라는 찬사를 보낸 이 책은 처음에는 소로우의 다른 저서들처럼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가 19세기 말 러시아의 톨스토이에게 발견되어 그의 정치, 사회 사상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이 책이 정작 세계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간디를 통해서였다.
20세기 초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간디는 이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으며, 이념을 정리해 준 하나의 교과서로 여겼다. 간디는 '나는 소로우에게서 한 분의 위대한 스승을 발견했으며, <시민의 불복종>에서 내가 추진하는 운동의 이름을 땄다.'라고 말했다. 그후에도 이 책은 영국의 노동운동가들, 나치 점령하의 레지스탕스 대원들, 마틴 루터 킹 같은 인권운동가들을 통해 세계사에 계속 영향을 끼쳐 오고 있으며 불의의 권력과 싸우는 수많은 사람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이제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말은 하나의 개념어로 사용되고 있다. 정부 또는 점령국의 요구, 명령에 대하여 폭력 등의 적극적인 저항 수단을 취하지 않고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소극적인 저항의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
1950∼1970년대의 미국 흑인 인권운동은 시민 불복종의 전술과 이념을 채택했고, 시민 불복종의 원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을 통해 국제법에서 그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불의의 법률에 대해 시민은 불복종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소로우의 생각은 100년이 지나서까지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폭력을 거부한 소로우의 생각은 폭력을 초월한 영향력을 가졌다. 지금도 <시민의 불복종>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양심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우는 하바드 대학을 졸업한 뒤, 형과 함께 사설 학교를 열어 잠시 교사 생활을 했다. 그리고 저명한 문필가이자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집에서 머무르며 가정 교사 생활도 하고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도 하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1845년 3월부터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기 시작하여, 같은 해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그곳에서 홀로 지냈다. '숲속의 생활'(Life in the Woods)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리는 『월든』(Walden)은 바로 월든 호숫가에서 보낸 2년의 삶을 소로우 자신이 기록한 책이다.
소로우가 명실상부한 자연주자라는 사실은 {월든}에서 더 없이 분명해진다. 단순히 호숫가 오두막에서의 생활을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자연과 깊이 교감하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솔직하게 적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그가 호수 표면의 잔잔한 움직임에서 크나큰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물은 새로운 생명과 움직임을 끊임없이 공중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물은 그 본질상 땅과 하늘의 중간이다. 땅에서는 풀과 나무만이 나부끼지만, 물은 바람이 불면 몸소 잔물결을 일으킨다. 나는 미풍이 물 위를 스쳐 가는 것을 빛줄기나 빛의 파편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안다. 이처럼 우리가 수면을 내려다볼 수 있다 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월든』p.229)
1846년에 소로우는 맥시코 전쟁과 노예제도에 반대하여 인두세(人頭稅) 납부를 거부했고, 이 때문에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다음날 석방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도망친 노예가 캐나다로 망명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고, 노예페지론자들의 회의에서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급진적인 노예폐지 운동을 전개하다가 사형 언도를 받은 존 브라운을 위한 탄원 강연을 하기도 했다. 소로우는 국가가 불의한 일을 시민들에게 강요해서는 안되며, 그러한 국가의 강요를 시민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는 시민불복종론을 펼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