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도종환 <부드러운 직선>

미송 2017. 10. 20. 18:03

 

부드러운 직선 / 도종환

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하늘 아래
사뿐히 추켜세운 추녀를 보라 한다
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
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
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
몇 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
나도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
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 잡아
지붕을 받치고 있는 걸 본다
사철 푸른 홍송 숲에 묻혀 모나지 않게
담백하게 뒷산 품에 들어 있는 절집이
굽은 나무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본다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절집은 절집답네요. 직선인 기둥과 서까래의 길이 차이로 곡선을 만들며, 직선과 곡선의 경계마저 허물어 놓는군요.
법당에는 용의 머리와 꼬리가 건물의 앞과 뒤에 장식되어 있지요. 이는 법당이 용이 수호하는 배(반야용선)를 타고 피안의 세계로 가는 곳이라는 상징이라지요. 반야(지혜)의 배를 타고 바라밀(저 언덕에 이른다)에 이르려면, 경계에 집착하여 생멸이 일어나 파랑이 이는 '이 언덕'을 버려야 한다지요. 그리고 경계를 떠나, 생멸이 없어 물이 끊이지 않고 항상 흐를 수 있도록 해야, '저 언덕'에 이를 수 있다지요. 이런 경계의 의미를 지닌 법당이니 외형의 직선과 곡선의 경계도 직선과 곡선의 합장으로 넘어서는 것은 아닌지요.
이 시는 곧게 살면서도 부드러운 강직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다짐 같기도 하지요. 이 시는, 직진하는 빛이 만들어 놓는 반원의 무지개처럼 내 마음속에 오래 떠, 마음에 이는 허튼 경계 지워줄 시임에 틀림없네요. <함민복 시인>

 

 

 

외유내강 외강내유. 찾아보니 둘 다 좋은 의미다. 그런데 나는 외유내강하라는 말을 더 많이 들어온 것 같다. 내실이 있어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감추고 겉으로는 부드럽게 보여야 하는 법, 재주는 반쯤 내보이고 나머지는 숨길 줄 알아야 하는 법. 속 빈 사람이 오히려 겉으로는 더 센 척하는 법이라는 이론. 얼핏 들으면 나는 후자의 속빈 강정에 속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 발 많이 저려 했던 것 같다.  함민복 시인의 도인의 경지 합장의 손바닥에 도달한 것 같은 감상을 도저히 뒤따를 수 없고, 도종환 시인의 퍼펙트한 수사의 힘을 흉내낼 수 없다. 무식하게 말해서 두 도인의 거룩한 경지에 발 살짝 디뎌 본 나는 그저 외유내강도 외강내유도 다 좋은 것이다 하며 고개 수그릴 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