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황동규 <즐거운 편지>

미송 2018. 2. 14. 11:04




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언제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종래의 운율적인 서정의 흐름(김소월, 박목월, 서정주 類)에서 산문체의 극서정克抒情으로 탈피한 시라 할까. 그의 시편들에서 감지되는 건 절대를 향한 인간의 자세, 그 자체가 비극적이란 거. (전부는 아니지만 대개의 그의 시편들의 주요한 배경) 요즘도, 영원한 사랑을 말하는 연시가 꾸준히 있지만. 인간이 지닌 무상성(無常性 : 허무하단 의미가 아니라, 영원히 항상恒常한 건 없단 의미)에 변하지 않을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시인은 일찌감치, 고교 시절에 그 모든 걸 눈치 챈 것을. 근데, 여기서 그냥 주저앉는다면 그의 시가 빛을 발할 이유도 없겠다. 쓰러짐의 몸짓을 표현하되, 스스로와의 치열한 대결의 자세를 취한다는 거. 또한, 운명적으로 치솟는 갈구가 빚어내는 안타까운 사랑을 내포하는 데 그의 시가 지닌 아름다움이 있다. 따라서, 그의 '즐거운 편지'도 침착하고 담담한 語調의 <절망적인 희망>인 것이다. 인간 앞에 영원한 사랑은 절망일 수밖에 없으나. (왜? 인간세상의 영역에서 영원한 사랑 같은 건 없으니까) 다만, 깨어진 사랑을 딛고 기다림의 자세로 새로운 자신을 更新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희망을 시적으로 예언한다. 하여, 마음의 변화는 존재 전환의 (즐거운) 계기가 되는 것을. 그의 편지도 그러한 것을. 사랑도 깨어짐으로, 그 황홀했던 순간이 더욱 빛나는 것을. <시인 안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