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금강경(사유를 뛰어 넘다)

미송 2018. 7. 20. 19:02




사유를 뛰어 넘다

   

 

여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믿는 마음으로 거스르지 않는다는[信心不逆] 대목이 나옵니다. 신심이란 허깨비와 같은 를 참된 실체라고 아는 전도몽상을 극복하여 깨달음의 세계에서 동시, 전체로 있음을 확실히 체험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사유를 뛰어넘어 나를 버리는 데서 나타나는 삶을 말합니다.

 

전도몽상이란 무지입니다. 사유에 의해서 설정된 일체법을 실체시하여 삶의 실상을 바로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한 무지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를 버리는 순간 즉각 공포가 사라지면서 온삶, 하나 된 삶으로 있는 것에 대한 신심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공과 더불어 일체가 되는 체험에서 오는 것입니다. ‘나를 버려 나에 대한 무지를 극복하여 공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근원적인 무지인 전도몽상에서 벗어나야만 죽음을 삶으로, 참으로 사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는 삶과 죽음을 떠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사는 것이라고 사유를 빌려서 말하지만, 근원에서는 삶과 죽음 자체를 떠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고 전체가 함께 열려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체가 삶에서도 열려 있고 죽음에서도 열려 있어 일체가 함께 사는 아름다움으로 있을 때 비로소 반야바라밀이 됩니다.

 

반야바라밀이 되었을 때 공포로부터 자유로워 전도몽상이 없어지고 신심이 지속됩니다. 신심 자체가 되는 것이 공이며, 이는 자기 자신을 전체로 여는 것입니다.

 

이러한 열림의 지혜 속에서 시작과 끝이 없는 자비, 자기 삶에 대해서 항상 자애로워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진실로 받아들여 참으로 사랑스럽고 자비롭게 여길 때, ‘나 없는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 신심이 생깁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한된 몸과 마음에 갇혀 진실한 자신을 보지 못하여 자신에 대한 무지를 극복하지 못하게 됩니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자비로워지는 것스스로 자유와 자비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래 우리의 모습이며 무엇에 의해서 자비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 항상 열려 있어서 자비로움으로 드러나는 것이 곧 체험된 신심입니다. 이러한 신심에는 공양할 부처님이나 공양을 받을 부처님이 계시지 않고, 공양하는 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하나 된 삶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뛰어난 복이라고 합니다.

    

 

금강경 pp247~248 타이핑 채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