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독백

분방(奔放)한 것 2

미송 2018. 8. 27. 18:09





분방(奔放)한 것 2   




여름

 

자정이 지나야 잠들 수 있었던 여름밤에는 킴 파란트 감독과 잘만킹 감독의 영화를 새벽까지 보곤 하였다. 대부분 토요일 밤이었다. 외출하지 않아도 좋은 다음 날 제이와 간밤에 본 영화로 토론을 하였다. 관객 스스로가 답을 내리도록 유도하는 감독들의 공통점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제 멋대로의 답을 더 즐기는 일은 기본 코드를 지키는 한도에서 즐기는 재즈와 닮았다.

 

 

고요한 위로

 

밤의 해변에서 혼자. 클레어의 카메라. 그 후. 풀잎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들 가운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가장 시적(詩的)으로 느꼈다. 지금처럼 그때도 맞았다면 좋았을까. 인생항로 제반사에서 항상 틀리거나 항상 맞거나 한 적은 없었던 기억이다.

 

순간을 긍정하는 마음으로 시간의 잔인성을 극복한다. 그래도 참 잘했어, 스스로를 격려하는 일은 지극히 사적이고도 위대하다.

 

 

아이들(Idle)

 

이쯤에서 게을러져야지 하는 자각이 일어날 때가 있다. 혹사시킨 어깨와 팔 혹은 다른 신체 부위가 전하는 말을 들어야 할 때, 이와 같은 때에 빈둥거리는 건 나태함이 아니다. 나중에 찾아봐야지 했던 악보처럼 일정한 상태에 머물지 않는 건강이기에, 건강을 위한 게으름은 필요하다.

 

놀이터의 아이들 풍경이나 벤치 위 책을 읽는 노인들 풍경에서 포착되기도 하지만 우선순위를 뒷전으로 미루는 나쁜 습관에서 발견되기도 하는 게으름. 게으름의 갈림길에서 선선한 쪽을 택하는 지혜 또한 필요하다

 

간발의 차이로 오름과 내림의 경계를 벗어나는 1단 기어의 상황. 물 아래야 어찌되었든 물 위로는 여전히 우아한 백조의 상황. 게으르다 나태하다 빈둥거리다, 이음동의어 같으나 내막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개별적인 언어에 애정을 쏟는 행위는 놀이 같아서, 엘이디 조명 아래 나의 일터는 놀이터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