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김승일 <같은 부대 동기들>

미송 2018. 12. 19. 18:20



같은 부대 동기들 / 김승일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우리들 첫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서 운동장

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난 이런 이런 죄를 고백했는데 넌 무슨 죄를 고백했니 너한텐 신부님이

뭐라 그랬어 서로에게 고백을 하고 놀았다

 

우린 아직 이병이니까 별로 그렇게 죄지은 게 없어 우리가 일병이

되면 죄가 조금 다양해질까 우리가 상병이 되면 고백할 게 많아

지겠지 앞으로 들어올 후임들한테 무슨 죄를 지을지 계획하면서

리는 정신없이 웃고 까분다

 

웃고 까부는 건 다 좋은데 성사를 장난으로 생각하진 마 우리가 방

금 나눈 대화도 다음 성사 때 고백해야 돼 어렸을 때 세례를 받은 동

기가 조심스럽게 충고를 하고

역시 독실한 종교인은 남다르구나 너는 오늘 무슨 죄를 고백했는

데 우리는 조금 빈정거렸다

 

나는 생각으로 지은 죄도 고백하거든 대부분 끔찍한 것들이라서

알려줄 수는 없을 것 같아

팔다리를 잡고 간지럼을 태웠는데도 너는 절대 고백을 하지 않았

고 그래서 우리는 겁이 났다 저 독실한 신자 녀석이 끔찍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김승일(金昇一)

1987년 경기 과천 출생.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8년 전 읽었던 시의 스토리를 우리 대화에 끌어들였다. 시제목을 '부담'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부담이 아니라 '같은 부대 동기들'이다. 주제를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별로 없는 시 같지만, 내 전공에 입각하자면 말꼬리를 물 수도 물릴 수도 있는 시. 엊그제 나는 왜 그녀와의 대화 중 이 시가 떠올랐을까. 그래서 다시 찾아보는 것이지만. 할 말이 너무 많으면 그 모든 말을 생략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방으로 노출된 시장이란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치며 살아간다. 돈과 에너지를 얻기도 하지만 일대 다수의 설정에선 누적된 에너지를 빼앗기기도 한다. 계급에 비례하는 죄의 진화는 하나의 상징. 위의 상징적 스토리는 무수한 조직에 대입될 수도 있다. 조직뿐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다변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어쨌든 인간문제든 죄의 문제든, 모든 문제들은 다 풀어낼 수가 있다고, 답을 내야만 한다고 빡빡 우기는 '최'. 그녀와 대면하는 일은 솔직히 힘이 든다. 왜냐면 나에겐 어떤 협박으로도 간지럼 태우기로도 열리지 않는, 침묵의 영역 또한 있기 때문이다.


그 영역은 자유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지키려 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누구의 어떤 요구에도 불응할 자유가 나에겐 있고 그건 개인적 낙<樂>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무서워할 끔찍한 생각만 하고 있다거나 감히 말하기 어려운 죄만 짓고 산다는 뜻은 아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