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의 작품

과거청산이 아닌 미래의 다짐이다

미송 2021. 12. 10. 18:57

 

박정희 전대통령을 비롯한 4300여 명의 명단을 실은 친일인명사전이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곧 편찬될 모양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불멸이듯, 나라를 배신한 이름 또한 민족의 기상을 세우고 그 생존을 위해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불멸일 것이다.

 

이에 박 전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가 법원에 게재금지 및 배포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신청이유는 박 전대통령이 일본군이 아닌 만주군이었으며 단순한 용병 즉 적이 누구든 개인적으로 돈 벌기 위해서 고용된 군인이었고, 당시 만주군의 적은 중국 팔로군이었으므로 우리의 항일투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민족문제 연구소는 당시 만주일보에 게재되었던 박 전대통령의 혈서를 공개했다. 박 전대통령이 나이가 많아서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할 수 없게 되자 이에 선처를 호소하는 글이었다.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건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참으로 지겨운 일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친일청산에 매달려 이렇게 지내야만 하는가, 그러나 민족적 양심이 살아있는 한 이 문제는 진통을 계속 몰고 올 것이며 오늘 또는 내 자식 세대에도 청산이 안 된다면 백년 이백년 후까지도 지속되어 끝내 막판의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민족을 배신한 죄란 이렇게 무섭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식민지 시대의 탄압과 압박으로 당시에는 변절 할 수뿐이 없었지만, 해방 후에는 민족에 기여한 공로가 크지 않는가? 또는 비록 변절하고 말았지만 이광수나 김동인처럼 한국문학에 기여한 바가 큰 사람을 일방적인 변절자로 낙인찍는 일이 너무하지 않는가. 그러나 민족 앞에서는 공과(功過)를 따지지 않는 법이다. 백번 민족에게 공을 세웠어도 단 한 번의 변절로 그 공은 다 무너지게 마련이고, 남는 것은 오로지 과(過)일 뿐이라서, 한번 배신은 영원한 배신인 것이다.

 

왜 이렇게 민족의 법정은 냉정하고 단호한가?

그것은 천년만년을 내다 봐, 민족 생존의 귀감을 삼기 위함이다.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여 치욕스런 이름을 영원히 남기는 일은, 단순한 과거청산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민족이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다시는 우리들 스스로가 민족을 배반하는 일이 없게끔, 변절자들은 끝내 민족의 보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선례를 확고히 하여, 우리 자손 대대의 번영과 생존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고 다짐인 것이다. 그래서 친일청산은 집요하게 마련이며 또 마땅히 집요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박 전대통령의 이름이 친일인명사전에 오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는 참으로 서글픈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를만한 행각이 존재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의 가깝고 먼 친척들 가운데 친일인명사전에 오를만한 인물이 있다. 이번에 편찬되는 사전의 명단에 올랐을 수도 있겠다. 일본군 출신이지만 박정권 때 장군의 계급장으로 예편한 분도 계시고, 일본 와세다 대학교 법학부를 다니다가 일본군에 입대했고, 일본 정계 재계를 주름잡는 그 막강한 학연을 등에 지고 한일수교회담 때에 막후에서 활동한 인물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보듬어 감싸야 할 친인척 간의 핏줄이요, 민족의 비극을 경험하지 못한 나에게도 안타까운 일이겠으나, 민족의 혼과 기상과 그리고 생존이라는 대명제 앞에서 사사로움을 내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2009-11-06

 

 

 

 

3인의 변론

 

21세기

종교재판에서 파문을 당한 3인의 죄명은

구조조정이었다

검사의 논고만 존재하는 법정

판결만 곧바로 떨어지는 법정

죄는 누가 범했는지

죄질이 어떤지

그 행위와 주체가 없는 범인만 덩그러니

 

변론거리도 변론도 존재하지 않았다

 

3인의 죄수들이 입 다물고 돌아 나오는 길에

문 앞에 줄지어 선 피고인들이, 파문의 예정자들이

내민 술잔

그래,

변론은 법정 밖에서 이루어졌다.

 

2009-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