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자유를 위한 변명

미송 2022. 11. 4. 11:47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구도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눈길이 끌렸다. 그의 길동무였던 신학자 해리슨 블레이크에게 보낸 13년 동안의 편지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숲 속 코끼리같이 홀로 길을 찾는 여행도 멋지겠지만 친구가 있어 함께 나눌 수 있는 여행은 얼마나 더 멋지고 아름다울까.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정보가 태산이라 책읽기에 도통 게을러진 요즘, 일말의 양심으로 책갈피를 펼쳤다. 최근 나의 화두인 진정한 부와 평화로움이란 무엇인가 주제에 맞아떨어지는 구절들.  

 

'집안에서도 여행자의 마음으로 머물라'  소로우의 문장이 위안을 주었다.

 

최고의 학벌과 갖가지 좋은 직업들을 가져 보았고 감성과 지성으로 시대의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주었던 소로우가 문명을 등지고 숲 속에서 살았다는 게 매력으로 느껴졌다. 호숫가 오두막에서 자유와 자연을 향유하며 시대정신을 초월한 명상들을 남긴 그.

 

왜 우리는 떠날 수 없을까. 소유로부터 왜 자유로울 수 없을까. 소유 지향적인 삶과 존재 중심적인 삶,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소로우의 질문이 못처럼 박혀 왔다.

 

'내가 가진 부는 무한하다. 왜냐하면 나의 재산은 소유가 아니라 향유이기 때문이다' 소로우 때문에 훨훨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충동이 일어났다.

 

간디는 소로우의 <월든><시민의 불복종>을 읽었고, 영국으로부터 인도를 독립시키기 위한 운동의 핵심으로 시민의 불복종 개념을 선택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시내버스의 흑인에 대한 차별적 대우에 저항하기 위해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펼치면서 소로우의 불복종 개념을 사용했다. 넬슨 만델라 역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을 이끌면서 소로우의 이념을 근본으로 삼았다. 베트남 전쟁 반대자들은 비폭력 시위를 위해, 1970년대 이후 핵무기 및 핵지지 반대를 위해, 시위자들은 그의 비폭력 시민운동을 이용했다.

 

난 한 번 했던 것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사업의 손길이 닿는 모든 것에는 불행이 따르는 법이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 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오직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만을 마주하면서, 삶이 가르쳐 주는 것들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산다는 것은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그토록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진정한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의 삶 전체에 매료된 나는 시대를 뛰어넘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가슴 설레었다.

 

집을 버리는 자가 존재의 집을 얻을 것이며, 한 영혼을 위해 신성한 불을 지피는 자가 신의 얼굴을 볼 것이며, 별을 따는 자가 진정으로 별을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집 안에 앉아서 오늘도 천리만리 여행길을 떠난다.  <오정자>

 

 

20070116-2022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