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는 시월의 고요 / 송종규
원서문학관의 정원에는 한창 봄이 와 있었고 그는 반바지에 맨발이었다. 그날 싱크대 앞에 서서 익숙하게 설거지하던, 영락없는 문학관의 안주인 같은 윤관영 시인을 처음 만났었다. 맨발이나, 설거지하는 남자의 익숙한 몸동작은 조금 낯설기도 하고 살갑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뒤로 두 번 대구에서 그를 만났는데 맨발처럼, 그는 늘 솔직했다. 그리고 명쾌하고 분명했다. 그를 말할 때 솔직, 명쾌, 발랄이란 낱말을 빼먹을 수 없고 그날 말들 위에는 그의 맨발이 가지런히 얹히는 걸 어쩔 수 없다. 간혹, 사무적인 일이나 하선암의 꽃소식 같은 안부를 전해올 때도 그는 한결같이 경쾌하고 살가웠다.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능력 하나를 다시 그의 맨발 위에 포갤 수 있다. 사실 윤관영 시인의 용기가 부럽다는 걸 제일 먼저 말하고 싶었는데 맨발에 관한 괜한 시비로 빙 둘러온 셈이다. 오랜 여행 끝에 다만 하선암(충북 단양)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눌러 앉았다는 사람이 윤관영 시인이다. 누구나 꿈구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일을 그는 과감하게 저지른 것이다. 문명의 소요와 도시의 풍요를 포기할 수 있는 현실 인식은 우직하고 정직한 예술가적 치열함에서 출발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 용기가 한없이 부럽다는 것을 고백한다.
시방/고요는 탱탱하다 고요에 둘러싸여/나뭇잎은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소리도/그 틈바구니를 뚫지 못하고 있다/냇물 소리도 고요에 눌려 납작하다/......버스가 늦는 것도 다, 이, 고요 탓이다
자연이라는 현실 위에 도시적 상상력이 가미된 만만치 않은 그의 첫 시집 원고에서 퍼 온 시 '시월의 고요'의 일부분이다. 자연의 한 컷에 시인의 감각이 이입되는 순간을 그는 아름답고 장엄한 흑백필름 속에 차곡차곡 쟁여 넣었다.
윤관영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하선암, 시월의 고요, 그리고 정직하고 치열한 삶의 기록들을 얹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시집 발간을 축하드린다.
<시안 여름호 줌렌즈>
시월의 고요 ―대잠리1
버스를 기다리는, 시방 고요는 탱탱하다 고요에 둘러싸여 나뭇잎은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소리도 그 틈바구니를 뚫지 못하고 있다 냇물 소리도 고요에 눌려 납작하다 어깃장 놓듯 달리는 레미콘 소리도 고요에 눌려 땅을 울리며 산자락으로 오른다 그의 異名은 심심하다이다 모가지 돌리는 것조차 그는 허락지 않는다 휴게소의 암캐도 앞발에 턱을 묻었다 버스가 늦는 것도 다, 이, 고요 탓이다 멀리, 버스의 이마가 번들거린다
시 전문이다. 시는 어떤 때, 어떤 일의 반복에서 오기도 한다. 그 반복이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이해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깊이를 가져온다. 이때의 나는, 시골에 가면서 차가 무슨 필요나 싶어 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다녔다. 정말 느리게 몇 번 안 오는 버스를 타는 것은 아무 생각이 없을 때나 하는 짓이지 지금이라면 못 한다. 그런 무료와 반복, 그 무료 속에서 갖게 되는 생각, 들어오는 풍경 등이 이 시를 태어나게 했다. 땅을 울리며 지나가는 레미콘 트럭은 거의 괴물스러웠다. 내가 풍경이란 말을 좋아하는데, 이 시야말로 풍경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아마 그림표가 그려진다면, 화자의 자리가 잡힌다면 이 시는 괜찮은 시가 아닌가 한다. 물론 그것을 짚어내는 독자도 그런 깊이를 가지고 있겠지만 말이다.
앵두와 나
앵두와 나는 행복했다 앞니에 터지는 앵두는 달았다 씨를 내뱉는 호흡이 간지러웠다 새빨간 피부는 매끄럽게 반짝였다 따서 왼손에 올려놓을 새도 없이 따먹는 앵두는 윗입술을 빠는 듯했으며 젖꼭지를 혀끝에 문 듯했다 앵두와 다다귀다다귀 좋았다 갑자기, 문득, 느닷없는, 단옷날의 번개와 소나기처럼 앵두가 앵두나무가 되자 가지가 앵두로 시뻘겋게 불타는 듯했다 애채는 두서 없었고 나무는 담벼락 한 쪽으로 물러났다 내가 가도 내가 와도 그예 담벼락이 되어 버렸다 울 줄도 모르던― 앵두는 반짝이는 빨간 눈물이 되어 사기 주발 위에 서정이 되었다 그네는
―『시와상상』08 가을호
지금 읽어 보니, 괜찮다. 그 무렵 그 때쯤, 일하다가 똥 싸면서 (재래식이라 문을 못 닫고, 또 너무 더웠고) 거기에 잡힌 풍경이 번개와 소나기가 덮쳤던 일정과 오버랩되어 시가 되었다. 마치 앵두나무는 박태기처럼 다다귀다다귀였다. 나는 내 시지만 '다다귀다다귀'란 말 때문에 더 좋아한다. 발랄한 기분으로, 비누방울처럼 튀는 어떤 분위기가 시가 되었다. 불행히도 앵두는 담벽이 되었고, 내겐 서정으로 남았다. 그게 시인지, 슬프다. 어떤 시인이 말한 것을 들은 적 있다. 첫사랑 그 사람의 옷솔기 터진 게 별 거 아닌, 그게 당시는 그렇게 싫었다고. 앵두도 그렇다, 일하면서 곁에 두고 보니, 떠난 것은 나였고 다가가도 더는 어쩔 수 없는 앵두다. 앵두는 그러거나 말거나 빨갛고 반짝이고 달고 다다귀다다귀다. 앵두란 말 참 예쁘지 않은가. 앵두, 이상하게 슬프면서도 발랄한 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