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456

목련 또,

1순서 없이 밀려드는 너희를 말막음하려던 순간 있었다고 봄, 잔소리하려 하면애시당초 없었던 것처럼 너희는 부활한다 그냥 태어나서 걱정 없이 무리 속구름 꽃처럼 마술사의 지팡이로 잠 깨운 숲길 물소리처럼 살아날 때 너희 시선 볼 끝에 닿을 때 너의 손끝 치맛단에 닿을 때 2정체불명의 소리 타닥타탁 토독토독 꽃바람 속삭임 동시에 터뜨리는 소리고픈 틈 메꾸는 사이좋은 소리 3꽃등 아래 어디쯤을 달리고 있었을 때 골목 지문들 기지개를 켜고 짖꿎은 글자들 달려와 악수를 청했다 말 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 극진히 말렸던 비트겐슈타인을 놀리듯 웃었다

채란 문학실 2024.05.06

시와 에스프리

녹색가게 활동가로 지내다 보니 벼룩시장이란 글자만 봐도 눈이 번쩍 뜨인다. 적성에 맞는걸까, 물건의 사연을 듣는 일이 재밌다. 헷갈리기도 하지만 불가분의 관계란 가구와의 사이에도 존재한다고 느낀다. 가구의 내부를 진맥하고 나오던 시인은 가구와 인간 사이 비가시적 무엇을 보았을까. 해와 달 그리고 별을 하늘의 오래된 가구라고 표현하다니. 가구의 비밀 / 고영 구청 앞 광장에 벼룩시장이 섰다 트럭에 실려 온 중고가구들이 침묵을 부리고 있다 안방이나 거실 혹은 서재에서 한 집안의 흥망성쇠와 함께 했던 각종 가구들, 이를테면 주인여자의 이상야릇한 체위를 거부하던 소파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비추다 쫓겨난 화장대 거울 (현명한 거울은 주인의 기분에 맞춰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부도난 수표를 받아먹고 헛배가 불..

채란 문학실 2024.03.13

김유정과 마르께스의 여자들

감춤의 미학 3년 전 김유정역을 지난 적이 있다. 기차역의 본래 이름이 신남역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김유정의 예술혼이 깃든 곳곳의 흔적에 관해 해설사의 해설을 들었지만, 사전지식 없이 따라나선 문학기행은 수학여행으로 끝났다. 가끔은 퍼포먼스에 시간을 처박기도 한다. 우연한 아침, 김유정의 동백꽃을 읽었다. 두 발로 둘러봤을 때보다 명확하게 한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길, 역시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다.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 안에는 불후의 인과 작용이 숨겨져 있다. 시간을 초월하고, 보편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편협한 결론으로 독자를 구속하지 않고 어느 때 그리고 누가 다시 읽어도 희망을 꿈꾸게 만드는 비결을 가졌기에, 사랑받는 것들은 사랑받을 짓을 한다는 말이 생겼을까. 마름의 딸 점순이는 열일곱 살. 춘..

채란 문학실 2023.09.02

불굴의 태양

스윙재즈의 창시자 장고 라인하르트는 손가락 두 개로 기타 코드를 눌렀다고 해 더 대단한 연주자도 있었는데 주먹손으로 태어나 과일 칼로 코드를 눌렀다는 그 뽕짝도 리듬앤블루스처럼 감상하는 나는 즐기고 싶은데로 눈길을 준다 당신 종종 의문에 찬 눈빛으로 쳐다본다 달빛을 너무 골똘히 올려다 보면 사시斜視가 될 수도 있다는데 리듬을 타야겠네 구름에 가려진 달 사이 언뜻언뜻 비치는 저 소리 밤하늘 유리창을 닦는, 20160920-20230828

채란 문학실 2023.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