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560

메리 올리버<휘파람을 부는 사람>

갑자기 그녀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어. 내가 갑자기라고 말하는 건 그녀가 30년 넘게 휘파람을 불지 않았기 때문이지. 짜릿한 일이었어. 난 처음엔,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나 했어. 난 위층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그녀는 아래층에 있었지. 잡힌 게 아니라 스스로 날아든 새, 야생의 생기 넘치는 그 새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지저귀고 미끄러지고 되돌아오고 희롱하고 솟구치는 소리였어. 이윽고 내가 말했어. 당신이야? 당신이 휘파람 부는 거야? 응, 그녀가 대답했어. 나 아주 옛날에는 휘파람을 불었지. 지금 보니 아직 불 수 있었어. 그녀는 휘파람의 리듬에 맞추어 집 안을 돌아다녔어. 나는 그녀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했어. 팔꿈치며 발목이며. 기분이며 욕망이며. 고통이며 장난끼며. 분노..

내가 읽은 시 2025.05.06

세사르 바예호<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

"이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아요"라고 너는 내게 말한다. "다 가버렸어요. 응접실, 침실, 정원에는 인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떠나버려서 아무도 없지요."나는 네게 이렇게 말한다. 누가 떠나버리면, 누군가가 남게 마련이라고. 한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이제 아무도 없는 곳이 아니라고. 그저 없는 것처럼 있을 뿐이며,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곳에는 인간의 고독이 있는 것이라고. 새로 지은 집들은 옛날에 지은 집보다 더 죽어 있는 법. 담은 돌이나 강철로 된 것이지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집을 짓는다고 그 집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집에 사람이 살 때에야 비로소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집이란, 무덤처럼,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이기 때문이지. 이것이 바로 집과 무덤이 너무너무 똑같은 점이지. ..

내가 읽은 시 2025.01.27

한강,『흰』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희어 보인다. 어렴풋한 빛이 어둠 속으로 새어들어올 때, 그리 희지 않던 것들까지도 창백하게 빛은 발한다.밤이면 거실 한 쪽에 소파침대를 펴고 누워, 잠을 청하는 대신 그 해쓱한 빛 속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흰 회벽에 어른거리는 창밖 나무들의 형상을 바라보았다.그 사람 -이 도시와 비슷한 어떤 사람-의 얼굴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 윤곽과 표정이 서서히 뚜렷해지길 기다렸다.   만년설  언젠가 만년설이 보이는 방에서 살고 싶다고 그녀는 생각한 적 있다. 창 가까이 서 있는 나무들이 봄에서 여름, 가을에서 겨울로 몸을 바꾸는 동안 먼 산 위엔 언제나 얼음이 얼어 있을 것이다.어린 시절 열감기에 걸린 그녀의 이마를 번갈아 짚어보던 어른들의 차가운..

내가 읽은 시 2025.01.13

맥스 슐만<사랑은 오류>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래왔듯이 이 일도 체계적으로 시작해나갔다. 우선 나는 그녀에게 논리학을 강의했다. 법대생으로서 나는 마침 논리학을 수강하고 있었으므로 모든 것은 아주 수월했다."폴리."나는 두 번째 데이트 때 그녀를 만나 말했다."오늘밤엔 '놀'에 가서 이야기를 하기로 하지.""이그, 멋있쪄."한 가지 이 여자를 칭찬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도무지 반대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우리는 캠퍼스의 밀회장소인 '놀'로 가서 늙은 상수리나무 아래 앉았다. 그녀는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무엇에 대해 얘기할 건데?"그녀가 물었다."논리학."그녀는 잠시 생각해 본 다음 그것을 좋아하기로 결정했다."그거 되게 멋진데."그녀가 말했다."논리학이란"하고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사고에 대한 학..

내가 읽은 시 2025.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