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퇴고실 164

이소라의 노랫말

말을 타고 달리다 가끔은 말이 되는 글자들을 정차시킨다 망각을 의심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중력을 챙긴다 꿈의 충동질 잃어버린 글자들을 양팔 중심에 채운다 새가 심장을 오므리듯  죽을 때까지 우리를 울릴 것 같은 나날 저마다의 말들이 다르게 해석되어도 한때는 같았지 하는 말들 다시 흘러간다 해도 평화의 중간지대 선량했던 숨결들  어젯밤과 같은 예,어젯밤 우리는 밭언저리에 자동차를 세우고 휘파람을 불었다 2년 전 먹이를 주려고 찾아갔었던 개 휘파람 소리를 듣고선 달려왔다 떠돌이 개는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더니 슬쩍 핥아주었다 바람이란 글자를 쓰면 바람이 불곤 한다 다르게 적힌 문장들을 추억이라 우기면 외롭고 따뜻했던 겨울 노래 좋아했던 가수가 떠오른다.  20171014-20240916

채란 퇴고실 2024.09.16

노마드

지 수 화 풍 공 흩어지고 다시 뭉쳐지면서 재활용되는 윤회의 4원소 혹은 5원소들이다, 우리는, 먼지들의 러시아워 속에 붐비는 먼지같은 존재들이다. -최승호 아메바> 中         황홀하던 포옹 황홀하던 키스 붉음은 분홍으로 대체될 것이다목숨을 때려 박은 창문들 브레이크 등 뒤로 사라진다  바람 쪽으로 흐느적대던 날들 귀를 바칠까 하여 우뇌를 더듬던 날들 각자도생을 꿈꾸는 날들 구두 뒤축 같은 마음을 끌고 불빛 아래 서면 꿰매다 만 마음자리가 들어온다 사금파리 길은 어린 시절 바로 그 길, 기억하는 자는 축배를 든다 프렌시스 베이컨의 회화 보다 폭력적이다 그러나 무작위로 피어나는 꽃들 폐쇄된 영화관 먼지들 유적인 듯 별처럼  20180415-20240905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네바다 주..

채란 퇴고실 2024.09.05

마흔 후반의 비망록

1 정겨움 죽을 고비를 두 번씩이나 넘기던 깜찍이가 살아났다. 멜롱이 오빠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우울증이 남아있던 그녀 쪼그리고 오빠의 동작만 살피던 그녀, 겅중대거나 벌러덩 자빠지거나 혀를 쏙 빼미는 오빠 흉내를 내기 시작하더니 뒤질세라 오빠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2쿨한 녀석들 이틀 전부터 밥그릇을 쳐다보지도 않는 깜찍이와 멜롱이. 동물들은 배부르면 안 먹는다고 제이가 말했으나 걱정이 되었다.  유리문 툭툭 치는 소리에 내다보니 나란히 처량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반가움에 장난으로 스마트폰을 디밀자 주인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였다.   3 한 때의 일  그는 생소한 장소나 음식을 나에게 꼭 알려 주었다. 그게 그거여도 그저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 날은 일하다가 점심 때 먹어봤다고, 빅햄거집엘 데..

채란 퇴고실 2024.05.20

쇼팽을 좋아하세요

(무언가풍 목소리가 무엇인지 이젠 기억조차 없지만) 찔리지 않으면 향기조차 맡을 수 없었기에 영혼의 상처를 감내해야 했을 때 유령같은 흰 사시나무,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 때 유일한 진실은 흐르는 눈물뿐이었을 때 쇼팽을 들었지 비익조가 되려 했다는 쇼팽 가장 몽환적일 때가 가장 자신에 가까워질 때였다는 쇼팽의 말을 비웃지 않았지 전주곡을 다 듣기에도 짧은 생 벽장 밖으로 쏟아지는 고독들 외치네 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불가침의 권리를 모든 헌법에 넣으라고 건반 위 일락이 조각나는 순간 20130901-20240406

채란 퇴고실 2024.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