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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읽다

화장끼 전혀 없는 얼굴. 석 달 열흘쯤 잠과 거의 친교가 없었나 싶은 피부톤. 울음을 쏟아놓을 것 같은 눈. 어느 신문에선가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이제 막 대학원을 졸업했을까 싶은 앳된 이미지를 남겨두었다.  어제 2005년 이상 문학상 대상작인 그녀의 장편소설 몽고반점을 우연히 접하게 된 건, 선물이란 이름의 독서강요에 의함이었다.“쳇, 몽고반점이 어디에 붙어있는 점이야 ” 첫 장을 열며 사뭇 슬픔끼 그득한 눈빛을 나는 직시하였다. 작년에 인기를 얻었던 TV 드라마 눈사람>의 시나리오처럼 몽고반점에도 처제와 형부가 등장했다. 사진작가 내지 행위 예술가인 한 남자의 프리즘으로 보는 원초적 성(性)에 대한 표현들이 섬세하고도 정밀했다.성실하여 나무랄데 없는 아내와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중년 남자..

좋은 문장 2024.10.14

풍향계의 기억

풍향계의 기억 / 오정자새의 부리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길 가르쳐 주는 양철손가락 바람의 외출을 너그럽게 대변해 주던 화살표 끝없는 움직임은 한 곳으로 정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미세한 바람에도 반동(反動)했던 회심의 내 이력에는 자력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던 정지 속 탐색을 천형이라 부르고 있다 고독한 회전의 운명을 사랑이라 말하고 있다    시작노트>미세한 바람의 움직임에도 자기 몸을 떨어야 하는 풍향계는 움직임을 그 생명으로 한다.  움직임에 예민한 촉수를 가졌지만 자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 하반신 불구. 타자의 길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정작 자신은 한걸음도 이동할 수 없는 풍향계의 존재론적 비애. 감상>삶이 깊어지면, 천형(天刑) 같은 그의 문학도 그 삶을 따라서 깊어진다던데... 그래..

바람의 일기 2024.09.28

이소라의 노랫말

말을 타고 달리다 가끔은 말이 되는 글자들을 정차시킨다 망각을 의심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중력을 챙긴다 꿈의 충동질 잃어버린 글자들을 양팔 중심에 채운다 새가 심장을 오므리듯  죽을 때까지 우리를 울릴 것 같은 나날 저마다의 말들이 다르게 해석되어도 한때는 같았지 하는 말들 다시 흘러간다 해도 평화의 중간지대 선량했던 숨결들  어젯밤과 같은 예,어젯밤 우리는 밭언저리에 자동차를 세우고 휘파람을 불었다 2년 전 먹이를 주려고 찾아갔었던 개 휘파람 소리를 듣고선 달려왔다 떠돌이 개는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더니 슬쩍 핥아주었다 바람이란 글자를 쓰면 바람이 불곤 한다 다르게 적힌 문장들을 추억이라 우기면 외롭고 따뜻했던 겨울 노래 좋아했던 가수가 떠오른다.  20171014-20240916

채란 퇴고실 2024.09.16

노마드

지 수 화 풍 공 흩어지고 다시 뭉쳐지면서 재활용되는 윤회의 4원소 혹은 5원소들이다, 우리는, 먼지들의 러시아워 속에 붐비는 먼지같은 존재들이다. -최승호 아메바> 中         황홀하던 포옹 황홀하던 키스 붉음은 분홍으로 대체될 것이다목숨을 때려 박은 창문들 브레이크 등 뒤로 사라진다  바람 쪽으로 흐느적대던 날들 귀를 바칠까 하여 우뇌를 더듬던 날들 각자도생을 꿈꾸는 날들 구두 뒤축 같은 마음을 끌고 불빛 아래 서면 꿰매다 만 마음자리가 들어온다 사금파리 길은 어린 시절 바로 그 길, 기억하는 자는 축배를 든다 프렌시스 베이컨의 회화 보다 폭력적이다 그러나 무작위로 피어나는 꽃들 폐쇄된 영화관 먼지들 유적인 듯 별처럼  20180415-20240905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네바다 주..

채란 퇴고실 202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