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일기 44

풍향계의 기억

풍향계의 기억 / 오정자새의 부리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길 가르쳐 주는 양철손가락 바람의 외출을 너그럽게 대변해 주던 화살표 끝없는 움직임은 한 곳으로 정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미세한 바람에도 반동(反動)했던 회심의 내 이력에는 자력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던 정지 속 탐색을 천형이라 부르고 있다 고독한 회전의 운명을 사랑이라 말하고 있다    시작노트>미세한 바람의 움직임에도 자기 몸을 떨어야 하는 풍향계는 움직임을 그 생명으로 한다.  움직임에 예민한 촉수를 가졌지만 자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 하반신 불구. 타자의 길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정작 자신은 한걸음도 이동할 수 없는 풍향계의 존재론적 비애. 감상>삶이 깊어지면, 천형(天刑) 같은 그의 문학도 그 삶을 따라서 깊어진다던데... 그래..

바람의 일기 2024.09.28

그의 이상형에 대한 심심한 낙서

그의 이상형에 대한 심심한 낙서 / 오정자 쟈크 프레베르의 시편을 읽다가 시편들 가운데 낑겨 있는 한 문장을 꺼내왔다 제목이 안 달려 있어서 프레베르의 시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문장이 좋아서가 이유겠지만 제목이 없어서 애처로웠을까 슬쩍 그 문장만 잘라왔는데 아마 그 문장을 적은 사람은 남자이겠다 이상형의 여인상을 그리고 있으니 것도 스무 살 처녀는 아니고 원숙한 여자를 원하는 분위기니 금성에 두고 온 여자 아니면 자기로 부터 도망치느라 몸에 가시가 다 뽑혀버린 여자를 그리고 있을까 삶을 예쁘게 단장할 줄 아는 청초함도 있어야 하지만 감정이 변덕을 부리지 않는 열정적이나 열정을 잔잔하게 품을 줄 아는 여자 장미를 잊지 못해 날마다 그리워 하는 어린 왕자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여자를 원한다고, ..

바람의 일기 2023.07.24

녹슨 십자가

녹슨 십자가 / 오정자 깨달음을 믿지 말라 이정표일 뿐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부르는 순간 그는 우상이 된다 이름의 권위로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은 현재진행형 길 걸어가는 저 사람의 모자 위에 또 모자를 씌우지 말라. 모세가 불길에 휩싸인 떨기나무 아래서 신의 정체를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불길 속에서 들려온 대답은 “나는 나다! (I AM WHO I AM)”이었다. 즉 나는 존재 그 자체라는 말이었다. 오 시인의 의 사유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며 시의 분수령으로 삼는다. /이름의 권위로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란 언어다. 신은 인간의 언어로 존재하지 않기에 그렇게 대답했는지도 모른다. 이는 인간들의 언어에 대한 불신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뜻과..

바람의 일기 2023.04.20

가을엔 그대여

당신과 엮이어 수천의 빛을 내고 수만의 언어를 펼치는 이 가을엔 손깍지 애무를 걸어봅니다 따갑게 익어가는 소리 들어보라 가로수 연인들 말하고 찬바람이 알려준 가을 집 안에서도 노래합니다 물가의 나무처럼 그대 쓸쓸한 날에도 날 지켜주세요 그대 떠나면 나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사랑하고도 침묵했던 나 떠나신다면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한해만 더 용서하세요 그대가 있어 여기까지 왔으니 의지가지없는 낙엽 위로 함께 걸어요 속살거려요. 2006 가을, 오정자 사랑의 기본 원칙은 내 삶 속에서 상대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것일 겁니다. 즉,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던지... 내 안에 상대를 품고 다니는 일이겠지요. "그대 떠나면 나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에리히 프롬 Erich Fromm'은 그의 에서 말하길, 성숙한 사..

바람의 일기 2022.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