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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코트의 나날들

비오는 날에는 유리창을 닦자 누군가의 말이 기억난 듯이 오늘도 아파트 난간에는 아침이불들과 몇 주 전 난간 아래로 몸 던진 노파의 아프고 아팠던 다리가 보이네 허술하게 닦인 유리창으로 뿌옇게 비치는 얼룩들 지워지지 않을 그림들과 걸었네 그것은 바로 어젯밤의 일 언젠가도 거닐었을 거리의 같은 간판들과 눈에 익은 소품들 다가와 나의 체온을 빌리겠다 하였지 그리고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야 귀띔하고 떠났지 빛살들 아이처럼 살아나는 날이었네. 푸른 코트의 나날들-오정자 시를 읽으면서 자꾸 유리창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몸을 생각하게 된다. 비 오는 날 유리창을 닦는 것은 흐린 바깥을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일 텐데, 이상하게도 이 시에서는 유리창을 닦을수록 세상이 더 또렷해지는 것이 아니라 얼룩과 흔적들이 나타난다...

내가 읽은 시 2026.10.06

백석<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굿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내가 읽은 시 2026.10.06

모리스 메를로 퐁티

모리스 메를로 퐁티 프랑스의 철학자.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레지스탕스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저술한 을 출간(1945년) ‘몸의 정치'에 관한 그의 독특한 이론을 세웠다. 같은 해에 레지스탕스 활동을 함께 했던 사르트르와 를 창간한 이후, 당시 지식인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공산주의의 문제’를 포함해, 예술·문학·윤리학 등에 관한 에세이를 연재했다. 이들 에세이 중에서 공산주의에 관한 것들은 (1947년), 그리고 예술·문학 등에 관한 글은 (1948년)로 각각 출간되었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 스탈린 정권에 대한 그동안의 지지를 철회하는 한편, ‘약탈강국’으로 변질된 소련을 비판했다(, 1955년). 1952년에는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사르트르와 결별하고 에서도 손을 뗐으며, 이후 베르그송과 라벨의 후임..

철학과 신화 2026.10.06

《유나바머: 비밀 실험》

1처음에는 단순히 한 테러리스트의 범죄와 성장 배경을 다룬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이 작품은 범죄 자체보다 인간의 자유, 사회적 소외, 기술문명, 그리고 신념이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나바머 테드 카진스키는 하버드 시절 심리학자 헨리 머리의 실험에 참여했다.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드러낸 뒤 그것을 공격적으로 반박당하는 실험이었다. 당시 머리의 연구에는 전쟁과 심리전, 인간의 신념과 스트레스에 대한 관심이 배경에 있었다. 특히 한국전쟁과 냉전의 ‘세뇌’ 문제까지 연결되는 시대적 맥락이 있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버드 실험 때문에 카진스키가 유나바머가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의 고립, 인간관계의 어려움, ..

영화 이야기 202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