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자료실 261

시계의 시간을 벗어나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작품을 쓸 때 영감을 얻는 방법을 소개했다.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가끔 저 밑의 어두컴컴한 무의식 세계에 다녀오곤 한다는 것이다. 안개로 가득 차 있는 그 무의식의 세계는 모든 사람의 영혼이 얽혀 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어느 누구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곳에 다녀와야 하지만, 그곳에 갈 때마다 길을 잃을까 봐 너무 두렵다고 했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길을 잃으면 시간 밖의 세계에 갇혀버려 다시는 현실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그 위험한 곳에서 소설의 자양분을 조금 건져와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어렵게 들고 온 자양분을 독자들을 배려해 현실의 물에 충분히 희석한 뒤 소설..

문학 자료실 2023.03.24

보르헤스 詩學 - 읽고 쓰는 나와 숨쉬는 나 사이

읽고 쓰는 나와 숨쉬는 나 사이 데리다(J. Derrida)는 ‘쓰기학’에서 사람의 마음을 표시할 수 있는 어떤 말도, 쓰기도 불가능함을 이야기한다. 소위 ‘차연’(differance)이라는 말로 데리다는 종래의 ‘논리 중심주의’에 반기를 든다. 데리다는 서구의 논리 중심주의의 뿌리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소리 중심적 사고에 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소리는 영혼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말을 들으면 진실을 알 수 있고 고해성사를 통해서 영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믿었다. 쓰기는 말을 받아적는 부차적 행위로 생각되었다. 여기에서 인류는 말하고 쓰는 행위가 진리를 있는 그대로 제시할 수 있는 것처럼 믿는 논리 중심주의를 전통으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차연’이란 말로 이들 전통에 반..

문학 자료실 2023.02.28

끌리는 문장

그러나 나는 살아 있는 인간이 가장 무섭다. 살아 있는 인간에 비하면 장소는 아무리 소름 끼쳐도 장소에 지나지 않고 아무리 무서워도 유령은 죽은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일 무서운 발상을 하는 것은 늘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요시모토바나나 삶이 어렵고 힘들다 해도 살다 보면 살아진다. 살다 보면 힘겨움에도 적응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겪다 보면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여져지게 된다. 알래스카의 혹한도 열대 지방의 무더위도 살다보면 적응해 살아갈 수 있다.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박현욱 그가 행운을 가져다주는 마스코트를 만들 수 없게 되어도 나는 술장사든 뭐든 할 수 있고 가난도 두렵지 않다. 다..

문학 자료실 2023.01.27

조지오웰 <시와 마이크>

나는 시를 쓴 사람이 직접 방송을 하는 게 그저 청취자들에게만 어떤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에게도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발견하고서 매료되었다. 시를 방송하는 방법에 관한 한 영국에선 별달리 시도된 바가 거의 없으며, 시를 쓰는 많은 사람들이 시를 크게 소리내어 읽는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이크 앞에 앉음으로써(특히 그럴 일이 정기적으로 있을 때) 시인은 우리의 시대와 나라에서는 달리 접할 수 없는 새로운 관계를 자기 작품과 맺게 된다. 근대에 와서(지난 200년 동안이라고 하자) 시가 음악이나 구어口語와 갖는 연관성은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 시는 존재라도 하기 위해 종이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시인이란 사람에게 노래나 낭송을 기대하는 건..

문학 자료실 2023.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