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의 작품 73

[칼럼] 폴뤼페몬의 침대

그리스 도자기에 그려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프로크루스테스는 '폴뤼페몬'이라고도 불렸다.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폴뤼페몬은 지나는 행인을 붙잡아서 침대에 눕힌 후, 다리가 길면 자르고 다리가 짧으면 망치로 두드려 길게 늘어뜨려 그 키를 침대에 꼭 맞췄다. 2001년 벽두에 뉴욕의 무역빌딩과 워싱턴의 펜타곤으로 여객기가 날아들어 테러라는 굉음을 울렸을 때, 치솟는 화염과 자욱한 먼지 속에서 무너져 내린 빌딩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평소에 내가 생각하기도 싫고 잊어버리고 싶었던 화두를 던지고 말았다. 조선왕조 멸망 후 빈한한 역사의 뒷골목을 배회하며 민족독립운동에 헌신한 김구선생과 김원봉선생의 얼굴이 뇌리에 오버랩 되었다. 무력으로 일정에 저항했던 우리의 애국지사와 이슬람세력의 독립을..

정문의 작품 2024.06.12

반대로 도는 시계바늘

모두가 떠났다고요? 혼자 남았다고요? 아닙니다. 떠난 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았고 기다릴 뿐입니다. 돌아봐 죽도록 사랑한 기억이 없다면, 와야 할 누군가 안 온 것이고 춥게 느껴진 빈 터는 그가 차지할 자리입니다. 인생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지 않고, 거꾸로 미래에서 현재, 그리고 과거로 흘러 언젠가 봉우리에 서면 계곡은 그저 지나온 자국일 뿐입니다. 이제 나 먼저 스스로를 털어버려야겠습니다. 과거의 먼지 하나라도 내 탓으로 돌렸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내 탓이 아닌, 누구의 탓도 아닌, 오직 날씨 탓으로 돌려 아무 죄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은 과거에서 오는 게 아니라 미래에서 오기에 결백합니다. 이런 생각이 자기합리화일까요? 아닙니다. 과거에 희생당하여 오늘이 불행하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과..

정문의 작품 2023.09.25

섹스에 관한 자기분석

섹스에 관한 자기분석 / 이정문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 1859년에 출판되었습니다. 25년간 연구하여 펴낸 찰스 다윈의 입니다. 다윈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자신의 연구가 기존의 종교관을 뒤엎는 결과가 나오리라 판단하고 발표를 미루었지만, 막상 발표된 후에는 유럽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기원전 4004년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그 동안의 통설을 뒤집었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쳐 원숭이에서 진화되었다는 연구결과는 종교계를 발칵 뒤집었습니다. 그러나 다윈은 종교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 무엇의 무엇, 또 그 무엇의 무엇은 계속 연결되어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어디엔가는 신이 존재하리라 믿었습니다. 방대한 자료와 실증적인 연구결과에 반..

정문의 작품 2022.05.03

봄날의 외출과 조신(調信)의 꿈

춘원 이광수의 죄의식과 불안이 이라는 소설로 엮어졌고, 이 소설의 모태는 삼국유사 3권에 나오는 조신의 설화니, 조신(調信)은 불가의 수행자로서 이미 남의 아내가 되어버린 김흔의 딸을 애모하여 낙산사의 관세음보살을 원망하며 지내던 중, 춘풍이 분분하여 만물을 그냥 놔두지 않는 계절에 남의 아내를 끼고 도망치는 조신의 발걸음이 과연 봄의 탓인가, 아니면 음흉한 마음 탓인가, 삼국유사를 펼쳐보다가 탁 내려놓고 서성이다보니 살짝 열린 문틈으로 손짓하는 그림자 있어, 아하, 봄은 남정네가 아닌 아낙인가 보다, 봄놈이 아닌 봄년을 쫓아 휘적휘적 밖을 나서서, 가고 가다보니 기차에 실린 몸은 철길의 끝인 강릉역에 도착하였다. 가로등 불빛을 밟으며 광장을 빠져나와 낙산사를 향하는 버스에 올랐으니, 바로 조신의 설화가..

정문의 작품 2021.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