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길 위에서의 생각

미송 2009. 3. 9. 23:17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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