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운문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혜주 <마술 풍차> (0) | 2009.03.09 |
---|---|
김선태<말들의 후광> (0) | 2009.03.09 |
2009 신춘문예 詩부문 당선작 (0) | 2009.03.09 |
박모니카<멱둥구미> (0) | 2009.03.09 |
이상<황소와 도깨비> (0) | 2009.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