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모른다. 문학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
문학이라고 철석같이 여겼던 게 알고 보니 문학이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지금은 그럼 문학이 뭔지 안다는 얘기일 듯한데, 여전히 문학이란 나에게는 인생이라는 밑그림처럼 완전히 이해되지 못한 채 언제까지고 그 개념 규정이 유보될 성질의 표상이다. 지금껏 내 글과 소설을 두고 스스로 '작품'이라고 지칭한 적이 없었듯, 나는 단 한 차례도 '나는 문학을 한다'는 투의 말을 써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무지개를 따라가봤을 것이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무지개를 잡으러 집을 나선 적이 있었다.
무지개는 그 곳에 없었고, 정확히 내가 달려온 거리만큼 멀리 달아나 있었다.
비슷한 기억이 있다. 마을 뒷산에 아기장수 바위가 있었다.
커서 역모죄로 끝내 죽임을 당했다는 그 장수가 아기였었을 때 잠깐 앉아서 쉬었다는 바위. 엉덩이 자국과 발자국이 선명하게 파여 있다고 했다.
예닐곱 살까지 말로만 듣건 그 예사롭지 않은 바위를 여덟 살 나던 해 용기를 내어 찾아갔다. 마침내 찾게 되었을 때의 실망감이라니. 그 보잘것없음이라니.
나에게 문학이란 무지개나 아기장수 바위 같은 것이지도 모른다.
아기장수 바위에 관한 얘기라면 나는 더 이상 누구의 말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바위 표면에 나 있던
엉덩이 자국과 발자국이라는 것도 바위 속의 무른 성분이 빗물에 파인 결과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몇 년 뒤 아기장수 바위를 다시 찾았다. 어째서 그 보잘것없는 돌멩이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것도 수백 년 동안 변함없이 아기장수 바위라 부르며, 기껏 설화 속 인물일 뿐인
그 장수를 역사적 인물처럼 여기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바위를 요모
조모 뜯어봐도 나로선 알 길이 없었다.
어쩌면 그 바위가 마을 사람들의 은밀하고 불온한 염원을 담고 있거나. 그 염원의 반영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나이를 더 먹고 십수 차례 더 그 바위를 찾은 뒤에야 겨우 가능했다. 아기장수 바위라는
게 우리 동네 뒷산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 이 산천, 가렴苛斂의 땅이면 어디에고 반드시 있다는 사실은 더 나중에야 알았다.
신기하게도 찾을 때마다 그곳에는 다른 바위가 있었던 셈이다. 모양새는 같았으나 내가 발견하는 아기장수 바위는 매번 달랐다는 말이겠다. 그리고 뭔가를 새로 발견할 때마다 이전 것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버리고 새로 얻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었지만 더 신기했던 것은, 찾으면 찾을수록 내가 그 바위를 찾는 게 아니라 그 바위가 나를 부르는 것 같더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눈 감고도 그 바위를 찾거나 그릴 수 있을 만큼 되었으나 여전히 나는 그 바위를 안다고 확신할 수 없다.
아니, 확신하기 싫다. 모른다고 해야겠다. 그래야 앞으로도 나는 그 바위를 찾아나설 수 있을 테니까. 문학이라는 바위는 줄창 내 기대를 배반하면서도 많은 것을 얘기 해줬고, 많은 것을 발견하게 했고, 또 분에 넘치도록 많은 행운을 가져다주었지만,
나는 끝내 문학을 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이를 모른다고 해야겠다.
실제로도 모른다. 어쭙잖게 안다고 하는 순간 문학은 죽고, 내게 왔던 모든 것들이 회수될 것만 같다. 이별과 박탈이 두려운 게 아니라 문학이라는
바위 없이 홀로 지내야 할
외로운 삶이 끔찍할 뿐이다.
구효서, <문학, 그 신비한 질문의 늪으로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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