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김경주<폭설, 민박, 편지1>

미송 2010. 12. 25. 09:02

    폭설, 민박, 편지1 

    ― 죽음의 섬, 목판에 유채 80*150,1886

     

    김경주

     

     

     

    주전자 속엔 파도 소리들이 끓고 있었다
    바다에 오래 소식 띄우지 못한
    귀먹은 배들이 먼 곳의 물소리를 만지고 있었다
    심해 속을 건너오는 물고기 떼의 눈들이
    꽁꽁 얼고 있구나 생각했다
    등대의 먼 불빛들이 방 안에 엎질러지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푸른 멀미를 종이 위에 내려놓았다
    목단 이불을 다리에 말고
    편지의 잠을 깨워나가기 시작했다
    위독한 사생활들이 편지지의 옆구리에서 폭설이 되었다
    쓰다 만 편지들이 불행해져갔다
    빈 술병들처럼 차례로
    그리운 것들이 쓰러지면
    혼자서 폐선을 끼끽 흔들다가 돌아왔다
    외로웠으므로 편지 몇 통 더 태웠다
    바다는 화덕처럼 눈발에 다시 끓기 시작하고
    방 안에 앉아 더운 수돗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
    몸은 핏속에서 눈물을 조용히 번식시켰다
    이런 것이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떼죽음 당하는 내면들,
    불면은 몸 속에 떠있는 눈들이
    꿈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건가
    눈발은 마을의 불빛마저 하나씩 덮어가는데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안 보인다는 홍석 곁에
    아무도 모르는 무한을 그어주곤 하였다

     

     


'운문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현국<배냇골 가는 길>   (0) 2010.12.26
김희진 <혀>  (0) 2010.12.25
이덕규 <나는 뻥튀기 장수올시다>  (0) 2010.12.24
김경미<오늘의 결심>   (0) 2010.12.15
박성우 <난 빨강>  (0) 2010.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