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민박, 편지1
― 죽음의 섬, 목판에 유채 80*150,1886
김경주
주전자 속엔 파도 소리들이 끓고 있었다
바다에 오래 소식 띄우지 못한
귀먹은 배들이 먼 곳의 물소리를 만지고 있었다
심해 속을 건너오는 물고기 떼의 눈들이
꽁꽁 얼고 있구나 생각했다
등대의 먼 불빛들이 방 안에 엎질러지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푸른 멀미를 종이 위에 내려놓았다
목단 이불을 다리에 말고
편지의 잠을 깨워나가기 시작했다
위독한 사생활들이 편지지의 옆구리에서 폭설이 되었다
쓰다 만 편지들이 불행해져갔다
빈 술병들처럼 차례로
그리운 것들이 쓰러지면
혼자서 폐선을 끼끽 흔들다가 돌아왔다
외로웠으므로 편지 몇 통 더 태웠다
바다는 화덕처럼 눈발에 다시 끓기 시작하고
방 안에 앉아 더운 수돗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
몸은 핏속에서 눈물을 조용히 번식시켰다
이런 것이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떼죽음 당하는 내면들,
불면은 몸 속에 떠있는 눈들이
꿈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건가
눈발은 마을의 불빛마저 하나씩 덮어가는데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안 보인다는 홍석 곁에
아무도 모르는 무한을 그어주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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