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서의 하룻밤
강성은
간질병을 앓던 사내아이가 눈 쌓인 숲에서 발견되었다
아이의 늙은 여자는 울다 정신을 잃었다
관을 짜는 노인이 줄자로 아이의 길이를 쟀다
어두운 골목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서로의 그림자에 흠칫 놀랐다
겨울을 저주했다 밤은 더 공포스러워했다
뒷산의 눈먼 올빼미는 날지 못하고 죽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고백하지 않아 더 슬펐다
겨울에 악기들은 영혼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고백하지 않아 더 부끄러웠다
새벽 눈보라의 입술이 잠든 마을을 무심히 갉아 먹었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눈 쌓인 숲 속에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매일 밤
—《현대문학》 2011년 1월호
강성은 /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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