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강성은<눈 속에서의 하룻밤>

미송 2011. 1. 31. 12:59

눈 속에서의 하룻밤

 

강성은

 

 

간질병을 앓던 사내아이가 눈 쌓인 숲에서 발견되었다

아이의 늙은 여자는 울다 정신을 잃었다

관을 짜는 노인이 줄자로 아이의 길이를 쟀다

어두운 골목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서로의 그림자에 흠칫 놀랐다

겨울을 저주했다 밤은 더 공포스러워했다

뒷산의 눈먼 올빼미는 날지 못하고 죽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고백하지 않아 더 슬펐다

겨울에 악기들은 영혼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고백하지 않아 더 부끄러웠다

새벽 눈보라의 입술이 잠든 마을을 무심히 갉아 먹었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눈 쌓인 숲 속에서 밤을 보내고 있었다

매일 밤

 

 

—《현대문학》 2011년 1월호

 

강성은 /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