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자료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미송 2011. 8. 20. 13:15

때는 12세기, 프랑스의 한 명망 높은 신학자가 『나의 불행한 이야기(Historia Calamitatum)』라는 책을 출간함으로써 유럽 전역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것은 대적할 상대가 없을 만큼 뛰어난 논리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의 대부였던 피에르 아벨라르[Pierre Abelard, 1079~1142]가 자신에게 환희와 치욕을 동시에 안겨 준 폭풍 같은 사랑에 대해 실토한 고백록이었던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그는 명성이 최고조에 다다른 40세 무렵, 20살 정도 어린 여제자 엘로이즈에게 압도당한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임신과 출산에 이어 비밀 결혼식을 치르지만, 격노한 엘로이즈 집안의 모략으로 아벨라르는 거세당하고 만다. 이후, 서로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두 사람은 각자 수도사와 수녀가 되어 신에 귀의했다.

종교라는 굴레가 이성을 가진 인간의 삶을 억압하던 중세 - 나이 차이를 제외하곤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한 연인의 사랑을 통해, 그 시대의 음울한 공기를 엿보자.



아벨라르는 1079년, 프랑스 소귀족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과 학문에 특출났던 그는, 적당히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삶이 보장된 기사직을 거부하고 신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 시기의 학풍을 '교회에 소속된 학교(schola)에서 가르치고 배운다' 하여 '스콜라 철학'이라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 당시 사상계의 화두는 기독교 교리를 정당화하고 체계화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보편(universals)'이라는 것이 현실에 존재한다고 보는 실재론[realism]과 그것이 단지 인간이 붙인 공허한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유명론[nominalism] 사이의 악명 높은 '보편 논쟁'이 수 세기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었다.

이런 풍토에서 성장한 아벨라르는 두 가지 입장을 모두 반박하고 이를 통합해 개념론[Conceptualism]이라는 독자적인 이론을 창시하였다. '보편'이란 유명론의 주장과 달리 일상에 실로 '존재'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실재론의 생각처럼 개별자를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거나 물리적 특성을 지니는 것이 아닌, 인간의 경험과 사고에 의해 '일반화되고 추상화된 개념'이라는 점이 그 핵심이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실재론자, 샹포의 기욤[Guillaume de Champeaux]을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공개 토론장에서 꼼짝 못하게 만드는 등, 상대가 누구든 오류가 있을 경우 철두철미하고 냉철한 논리로
거침없이 논박을 가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완고한 성격 탓에 수도사들의 부정을 폭로하여 암살당할 뻔 한 적도 있었다. 이런 신랄함 때문에 적의 수는 늘어났지만 평판 또한 갈수록 높아져,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각지에서 수강생이 몰려들었다.



노트르담 주교좌 성당 학교의 교사가 된 아벨라르는, 참사회원 퓔베르[Fulbert]의 조카 엘로이즈[Héloïse, 1100(?)~1164]를 보고 가슴이 뛴다. 자청하여 그녀의 개인교사가 되면서, 두 사람은 공부보다 사랑을 논하고 책보다 서로의 육체를 탐했다. 이를 눈치챈 퓔베르가 그들을 갈라놓으려 했지만, 이미 임신한 상태였던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의 누이 집으로 피신해 아들을 출산한다. 그는 결혼을 원했으나 엘로이즈는 성직자가 될 그의 앞날에 누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아벨라르는 홀로 퓔베르를 찾아가 혼인하여 그녀를 책임지겠으나 성직자로서의 입장을 고려해 비밀로 해줄 것을 부탁하였고, 이윽고 그들은 친족들이 보는 가운데 조용히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형식상의 부부일 뿐, 두 사람은 여전히 떨어져 지내면서 가끔 남의 눈을 피해 만나야 했다. 또한 퓔베르가 약속을 어기고 집안의 명예를 위해 결혼사실을 공개하자, 이에 반발하는 엘로이즈까지 학대하는 등 사태는 악화되어갔다. 아벨라르는 다시 그녀를 수녀원에 피신시켰고, 그녀가 버림받았으며 모욕당했다고 격노한 퓔베르는 사람을 시켜 그를 거세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오만한 천재, 아벨라르는 육체적인 상처는 물론이고,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얻었다. 사건 직후 그는 수사가 되어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엘로이즈 역시 - 자신이 원한 삶은 아니었겠지만 - 그의 조언에 따라 수녀가 되었다.



헤어진 지 10년 만에 그들은 짧은 재회를 한다. 엘로이즈가 기거하던 수녀원이 문을 닫게 되자 아벨라르가 곤경에 처한 그녀와 그녀의 동료가 머물 수 있는 수녀원을 주선해 주면서였다. 이후, 아벨라르의 『나의 불행한 이야기』를 접한 엘로이즈가 그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두 사람 사이엔 1132년부터 1137년까지 총 12통의 편지가 오고 갔다. 전하고 싶어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이야기들, 수만 번 정제시키고 은밀하게 밀봉한 감정의 편린들이 힘겹게 문자로 옮겨졌으리라. 이 유명한 연애편지는 그들 사후에 발견되어, 900년 간 시, 소설, 회화, 연극 등 다양한 예술 작품으로 각색, 전승 되어 왔다



우리가 중세를 다크 에이지[Dark Ages]라 부르는 이유는, '철학이 신학의 시녀'가 되어 신의 계시라는 절대성 아래 인간의 이성과 감정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중세를 지배했던 교회의 지나친 엄숙함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자유롭게 견해를 표현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벨라르 역시 말년에 그의 사상이 이단으로 몰려 큰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어두운 중세에도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신앙과 이성의 조합을 통해 양자의 수준을 함께 격상시킨 학자가 있었으며, 사랑이라는 숭고함은 분명 존재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가 함께 한 시간은 고작 1년 남짓이지만, 그 1년의 기억 덕분에 그들은 그토록 고단한 삶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엘로이즈는 아벨라르가 죽자 그의 시신을 수녀원으로 옮겨 와 묘를 돌봤으며, 죽어서는 함께 묻혔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유해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았지만, 1817년 (쇼팽, 발자크, 짐 모리슨, 오스카 와일드 등 여러 명사가 묻혀 있는 것으로 유명한) 페르 라쉐르 공동묘지에 이장됨으로써 평온을 찾았다고 한다. 그들의 묘지는 현재, 전세계 연인들의 방문을 받는 사랑의 순례지로 거듭나고 있다.

 

주인에게 아니 아버지 같은 이에게, 남편에게 아니 오라버니 같은 이에게, 그의 하녀 아니 딸이, 그의 아내 아니 누이가, 아벨라르에게, 엘로이즈가.....

 

 

귀중한 분이여,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파렴치한 배반의 행위가 나에게서 당신과 나 자신을 동시에 앗아갔음을 아실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나는 당신에게 순종하여 당신이 나의 영혼만이 아니라 몸의 유일한 주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내 의복만이 아니라 마음도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사랑은 광기로 변하여, 사랑이 유일하게 얻으려고 했던 것을 얻을 희망을 잘라버렸습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오직 당신 자신만을 구했다는 것, 당신의 것이 아니라 당신만을 바랐다는 것을 하느님은 아십니다. 나는 혼인 계약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참금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기쁨이나 내 의지라 아니라, 당신의 기쁨과 의지를 앞세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아내라는 이름이 더 거룩하고 더 힘이 있는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연인(amica)이라는 말이 늘 더 달콤하였습니다. 심지어 - 화내지 마세요!- 첩이나 매춘부라는 말이. 당신 앞에서 나 자신을 낮출수록, 당신의 은혜를 더 많이 바라게 되고 당신의 명예를 덜 손상시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설사 세상의 주인인 아우구스투스가 나에게 그와 결혼하는 명예를 주고 또 세상을 다스릴 권리를 준다고 하더라도, 하느님 앞에 솔직히 말하거니와, 나는 그의 황후라고 일컬어지기보다는 당신의 매춘부라 일컬어지는 것이 더 귀하고 더 명예롭게 느껴집니다. 부유하고 권세가 많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은 아닙니다. 부와 권세는 운에서 오는 것이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지닌 가치에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을 버리고 부유한 사람과 결혼하는 여자는 타산적이며, 남편 자신보다는 남편의 부를 더 갈망합니다. 그런 여자는 돈을 받을 자격이 있을지는 몰라도, 애정을 받을 자격은 없습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물건을 구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더 부자인 사람에게 몸을 팔고 싶어할 것입니다.

 

- 조지프 캠벨, 신의가면 Ⅵ 74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