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2세기, 프랑스의 한 명망 높은 신학자가 『나의 불행한 이야기(Historia Calamitatum)』라는 책을 출간함으로써 유럽 전역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것은 대적할 상대가 없을 만큼 뛰어난 논리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의 대부였던 피에르 아벨라르[Pierre Abelard, 1079~1142]가 자신에게 환희와 치욕을 동시에 안겨 준 폭풍 같은 사랑에 대해 실토한 고백록이었던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그는 명성이 최고조에 다다른 40세 무렵, 20살 정도 어린 여제자 엘로이즈에게 압도당한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임신과 출산에 이어 비밀 결혼식을 치르지만, 격노한 엘로이즈 집안의 모략으로 아벨라르는 거세당하고 만다. 이후, 서로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두 사람은 각자 수도사와 수녀가 되어 신에 귀의했다.
종교라는 굴레가 이성을 가진 인간의 삶을 억압하던 중세 - 나이 차이를 제외하곤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한 연인의 사랑을 통해, 그 시대의 음울한 공기를 엿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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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에게 아니 아버지 같은 이에게, 남편에게 아니 오라버니 같은 이에게, 그의 하녀 아니 딸이, 그의 아내 아니 누이가, 아벨라르에게, 엘로이즈가.....
귀중한 분이여,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파렴치한 배반의 행위가 나에게서 당신과 나 자신을 동시에 앗아갔음을 아실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나는 당신에게 순종하여 당신이 나의 영혼만이 아니라 몸의 유일한 주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내 의복만이 아니라 마음도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사랑은 광기로 변하여, 사랑이 유일하게 얻으려고 했던 것을 얻을 희망을 잘라버렸습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오직 당신 자신만을 구했다는 것, 당신의 것이 아니라 당신만을 바랐다는 것을 하느님은 아십니다. 나는 혼인 계약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참금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기쁨이나 내 의지라 아니라, 당신의 기쁨과 의지를 앞세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아내라는 이름이 더 거룩하고 더 힘이 있는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연인(amica)이라는 말이 늘 더 달콤하였습니다. 심지어 - 화내지 마세요!- 첩이나 매춘부라는 말이. 당신 앞에서 나 자신을 낮출수록, 당신의 은혜를 더 많이 바라게 되고 당신의 명예를 덜 손상시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설사 세상의 주인인 아우구스투스가 나에게 그와 결혼하는 명예를 주고 또 세상을 다스릴 권리를 준다고 하더라도, 하느님 앞에 솔직히 말하거니와, 나는 그의 황후라고 일컬어지기보다는 당신의 매춘부라 일컬어지는 것이 더 귀하고 더 명예롭게 느껴집니다. 부유하고 권세가 많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은 아닙니다. 부와 권세는 운에서 오는 것이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지닌 가치에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을 버리고 부유한 사람과 결혼하는 여자는 타산적이며, 남편 자신보다는 남편의 부를 더 갈망합니다. 그런 여자는 돈을 받을 자격이 있을지는 몰라도, 애정을 받을 자격은 없습니다. 그녀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물건을 구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더 부자인 사람에게 몸을 팔고 싶어할 것입니다.
- 조지프 캠벨, 신의가면 Ⅵ 74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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